신문로
국민주권정부 제일의 가치는 ‘통합’
21대 대선은 역대 선거를 포함해서 과반에 가까운 최다득표를 한 이재명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해 불법계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45년 전으로 회귀시킨 무도한 폭거였고, 주권자는 민주적 정당성을 통해 이를 바로잡고 정권을 갈아치웠다.
그러나 윤석열 탄핵 과정에서 빚어진 갈등과 분열은 한국사회의 동력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있다. 극우세력에 편승해서 정치적 기득권을 누리려는 제도권 내 보수참칭 세력의 비뚤어진 역사관과 퇴행적인 냉전 사고가 제거되지 않는 한 극심한 분열과 갈등은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이재명정권이 향후 순항할지, 또 다시 진영간의 극심한 갈등에 노출될지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통합을 제1의 가치로 내세웠던 것처럼 우리사회의 보수와 진보진영의 대결구도는 임계점에 달해있다. 이재명정권은 사회정치적 내전상태나 마찬가지였던 계엄과 탄핵정국에서의 극단적 증오를 해소하고 정상적 정치가 작동하는 정치복원을 이루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 상대 진영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탄핵에 반대했던 극우세력이 선거 후라고 해서 생각을 바꿀 리 없다. 반이재명 세력은 끊임없이 사법문제로 정권의 정당성을 흔들려 할 것이다.
반대세력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 확립 노력
통합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극단적 반목에는 역사적 연원도 있다. 분단과 냉전으로 얼룩진 현대사는 극단적 좌우의 대립을 결과했고,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의 상호대립은 진영 대결로 고착화됐다. 이를 이용하여 정치세력들은 적대하면서 상대의 존재로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했던 모순적 상황이 이어져왔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분열과 갈등이 체화되고 사회적 관용과 자제는 사라졌다.
이재명정권은 어느 정권보다 보수진영의 반발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 대통령이 제시했던 통합이 한국사회가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느냐의 시금석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이재명정권은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강한 국가(strong state)를 형성하면서 정권에 대한 반대세력을 억압하고 싶은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를 스스로 견제하고 성찰하지 않으면 반대세력에게 ‘안티(anti) 이재명’의 명분을 주게 되고, 대치와 증오의 적대정치는 다시 일상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은 당내 재편과정을 거칠 수 있지만 김문수 후보의 득표가 40%를 넘었기 때문에 당내 친윤의 영향력은 여전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집권여당은 이 대통령에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의 반감을 해소하고, 그람시(Gramsci)가 강조하는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입법과정에서 야당과 충분히 대화하는 것은 물론 야당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입법은 이재명정권의 의지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과정에서 헌법 제84조의 대통령의 재직 중 불소추특권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야당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사실상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임기 초반부터 이 문제로 갈등과 반목이 재연된다면 정권의 추진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국민을 설득하고 야당의 동의를 최대한 이끌어내는데 모든 정치력을 쏟아부어야 할 이유이다.
그리고 통합을 위한 정치관계법 개정을 점진적으로 모색해 나가야 한다. 제도 실천의 차원에서 지금의 단순다수대표제와 소선거구제하에서 정치양극화와 승자독식은 불가피하다. 위성정당의 꼼수로 형해화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따위는 과감히 폐기하고 독일식의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제도적 디자인이 필요하다.
개헌을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지만 이 대통령이 공약했던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 제도 등의 헌법 개정 역시 민생회복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개헌이 경제와 여타의 이슈로 밀리게 되면 87체제의 종식은 또 물 건너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숱한 사법적 위기와 난관을 무릅쓰고 이재명은 대통령이 됐다. 선거기간 중 약속대로 파란과 빨강색을 가리지 말고 보수와 진보의 이념에서 자유로운 대통령, 중도의 가치를 지향하면서 국민과 소통한다면 이 대통령이 당선 일성으로 발신한 ‘통합’을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