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라면 한그릇의 효과…외로운 이웃 달랜다

2025-06-12 13:00:05 게재

도봉구 고립 우려 주민 위한 ‘라지트’

1인가구 선배 ‘공간지기’가 경험 공유

“라면이든 커피든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면 좋겠습니다. 집에서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 아직 많아요.”

서울 도봉구 창동 주민 설정백(66)씨.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소개받은 뒤 15년째 창동종합사회복지관을 이용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발걸음이 더 빈번해졌다. 복지관 2층에 문을 연 ‘라지트’때문이다. 그는 “복지관 식당은 시간이 정해져 있어 서둘러 와야 하고 빠르게 밥만 먹고 간다”며 “라지트에서는 먹으면서, 마주 앉아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언석 구청장을 비롯해 도봉구 도봉구의회 관계자 등이 라지트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도봉구 제공

12일 도봉구에 따르면 서울시 마음편의점 도봉점인 라지트가 문을 연지 두달 남짓만에 주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함께하는 라면 아지트’를 줄여 이름붙인 이 공간은 외로움을 느끼는 주민들 몸과 마음을 챙기는 곳이다. 조민정 사회복지사는 “1인·고립가구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자조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주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희망했다”며 “식사를 해결하지 못하거나 외로움 때문에 복지관을 방문하는 주민들이 음식을 나누며 대화할 수 있도록 꾸몄다”고 설명했다.

라지트 중앙에는 함께 둘러앉아 식사나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을 배치했고 혼자 먹기를 희망하는 주민들을 고려해 창쪽으로도 의자를 놓았다. 한강라면을 끓이는 기계와 함께 안마의자와 체성분측정기를 들여놨고 다양한 라면과 음료, 즉석식품도 비치했다. ‘오늘의 운세’를 본뜬 ‘마음캡슐’은 대화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고 장기나 양말목 공예를 하면서 무료함을 달랠 수도 있다.

주 이용자는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소모임 참여자들이다. 우울·자살예방 중장년과 노인 모임인 ‘마음재작소’ ‘마음챙김소’를 비롯해 고시원 1인가구 자조모임 ‘창숨이’, 정서지원 프로그램 ‘돌봄을 채우다’ 참여자 등이다. 하루 평균 60여명이 이용하는데 더 넓은 공간을 원하는 주민들 요구에 한차례 확장공사까지 했다.

외로움을 경험하고 극복한 ‘공간지기’들이 사회복지사와 함께 주민들을 맞는다. 주민 6명이 2명씩 조를 이뤄 공간 관리를 하면서 이용자들 안부 확인을 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눈다. 매주 5일 내내 라지트를 지키는 공간지기도 있다. 그만큼 이용자들 호응이 크다. 자살 고위험군으로 꼽히는 정 모(80)씨는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금세 친구가 된다”며 “한달에 네번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정백씨는 매일같이 출근도장을 찍는다. 그는 “안마도 하고 나이든 분들한테 기계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며 “하루하루 재미있게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도봉구는 ‘취미찾기 여가놀이터’를 비롯해 ‘힐링수다회 오락(娛樂)’ 등을 더해 라지트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현재 공간과 연결된 강의실을 모임과 상담 프로그램 등에 활용할 준비도 하고 있다.

접근성이 떨어져 라지트를 찾기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서는 매달 한차례 진행하는 ‘찾아가는 복지상담’과 연계해 이동형 마음편의점을 운영할 예정이다. 매달 마지막 금요일에는 ‘라지트 마켓’을 연다. 출석하면서 받은 교환권만큼 필요한 물품으로 바꿔갈 수 있다. 구는 여기에 더해 푸드뱅크에 대량 후원을 요청하는 한편 동주민센터와 지역 점포에 나눔상자를 설치해 기부를 이끌어낼 방침이다.

오언석 도봉구청장은 “주민 한사람 한사람 삶에 깊이 스며드는 정책과 사업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한명도 놓치지 않는 촘촘한 복지를 실천하며 모두가 함께하는 따뜻한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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