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원용의 중앙아시아 톺아보기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열강의 각축과 러시아의 도전

2025-06-12 13:00:03 게재

구소련 해체는 중앙아시아 5개국의 분리 독립과 함께 이 지역에 중국 유럽연합(EU) 미국 등 열강들이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경쟁을 촉발했다. 그리고 30여년이 흘렀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중앙 유라시아에는 다시 중앙아시아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구축하려는 강대국들 간 치열한 각축전이 전개되고 있다.

올 4월 3~4일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EU는 중앙아시아 5개국과 역사적인 첫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EU는 운송, 주요 원자재, 수자원-에너지-기후, 디지털 연결성 등 4개 핵심 분야에 120억유로의 투자 패키지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전문가들은 EU가 중앙아시아 전략 갱신(2019년), 협력 심화를 위한 로드맵 채택(2023년) 이후 결단한 중대한 행보라고 평가한다.

EU, 중앙아시아 5개국과 역사적 정상회담

EU가 특히 중앙아시아와 에너지원 다변화 및 핵심 원자재 확보, 카스피해 통과 국제운송로를 중심으로 교통인프라 개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과거 EU의 ‘글로벌 게이트웨이’ 전략(2021년 12월)에도 담긴 구상이다. 하지만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후 전략적 의미는 더 커졌다. 중앙아시아가 대러 제재의 우회로로 활용되는 것을 차단하고 러시아를 우회하는 대체 유라시아 운송회랑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러제재로 에너지원 및 핵심 원자재 확보의 취약성에 노출된 EU가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중요한 파트너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보인 것이다.

한편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앙아시아 정책에서 아직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않았다. 바이든정부는 2023년 9월 뉴욕에서 처음으로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들과 C5+1 형식의 정상회담을 개최했고 상응하는 민간 부문의 플랫폼으로서 B5+1 포럼을 창설했다. 1차 포럼은 작년 3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열렸다. 공공 및 민간 부문 간 대화를 통해 경제협력을 촉진하고 중앙아시아 시장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1996년 초 미 국무장관 특별보좌관 겸 특명 전권대사인 제임스 콜린스에 의해 정식화된 노선을 큰 틀에서 유지해왔다.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차단, 서구기업의 중앙아시아 진출 및 투자 확대를 위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주권 지원, 지역안보 차원의 서방의 영향력 확대 및 지역협력 장려, 테러리즘과 극단주의 등 안보 위협에의 대응 등에 집중되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도 이러한 노선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다만 상황 변화를 고려한 미세조정이 예측된다. 트럼프는 바이든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정책 실패를 바로잡겠다고 장담했다. 그의 관점에서 중앙아시아는 러시아가 아닌 중국과의 경쟁 공간이다. 중국이 ‘일대일로’로 중앙아시아와의 연결성 확보에 성공하고 최근 아프가니스탄으로의 세력 확장에 가장 공세적이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중국의 침투와 영향력 확산을 차단하는 것이 급선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중장기 전략적 가치를 고려하면서 사업 개발과 최대 이익 창출에 우선순위가 놓이게 되는 국가들 중심으로 공간 지배력의 완급을 조절하는 차별화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러시아 아닌 중국과의 경쟁 공간

현재 중앙아시아는 독립 주권 영토보전에 대한 미국의 지원과 포괄적인 경제협력을 기대하지만 다극화된 세계에서 지정학적 선택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데는 주저한다. 강대국간 경쟁을 지켜보며 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이 뚜렷하다.

이에 러시아도 중앙아시아 외교전략을 공세로 전환하고 있다. 변화를 촉발한 일차적인 요인은 ‘상실감’이다. 서방의 언론과 비정부 부문의 활동 탓이라고는 하지만 러-우 전쟁 발발 후 중앙아시아 엘리트 내부에 자신들도 우크라이나와 같은 운명에 처할 수 있다는 공포 심리가 자리하고 있다.

지정학적 경쟁국들이 너도나도 C5+1 정상회담에 나서면서 중앙아시아의 지역주의와 외교 다각화를 자극하는 것도 도전 요인이다. 2023년 5월 중국 시안에서 제1차 중국-중앙아시아 정상회의(C5+1)가 개최되었다. 서구와 대결하는 사이에 중국에게 더 자유롭게 중앙아시아로 진입할 ‘발판’을 허용한 것이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중앙아시아의 지경학적 가치를 재인식하게 된 것도 러시아의 공세적 태도 전환에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를 경유한 병행 수출입을 확대함으로써 서방의 제재 충격에서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중앙아시아와 경제협력을 통해 러시아의 많은 기업들이 생산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고, 루블화 결제 체계를 통해 탈달러화 시도를 모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러시아의 수출입에서 중앙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중앙아시아로의 투자 진출도 늘었다.

러시아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 중앙아시아 센터장 스타니슬라브 프리친에 따르면 현재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자본이 참여한 기업의 숫자는 2만3000개로 외국자본 지분 보유 기업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러시아 자본이 중앙아시아로 관심을 전환하고 산업연관체계를 복원하고 있다. 더불어 유라시아경제연합의 내구력을 강화했다. 명확한 ‘제재의 역설’현상이다.

러시아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아시아와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인구는 7200만명이고 그중 1700만명이 영구 이주민이다. 이 중 90%가 러시아에 거주한다. 러시아로 유입되는 대다수 외국 노동자는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출신이다.

러시아로 편입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재건을 위해서는 중앙아시아 노동력을 유치해야 한다. 지난 십여 년간 연평균 백만명씩 인구가 증가한 중앙아시아로서는 일자리 부족의 탈출구를 여는 중요한 기회다. 대규모 해외송금 유입에 대한 기대도 크다.

다극화 시대, 러시아의 상대적 우위 위협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와의 경제협력을 단순 수출입 거래에서 산업기술 협력으로, 그리고 다시 첨단기술 협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역내 에너지 안보 문제에서 전략적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2023년에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삼각가스동맹이 결성되었다. 역내 천연가스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가스화를 촉진하는 사업이다. 원전 건설 협력도 진행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그리고 세계 최대 우라늄 공급국(42%)인 카자흐스탄이 원전 건설을 결정했다. 향후 러시아 국영회사 로사톰의 주도로 연료 가공과 원전 건설까지 통합된 협력 체계가 구축될 전망이다.

교통 물류 부문에서는 남북국제운송회랑이 핵심 사업이다. 발트해와 북극의 러시아 항만을 페르시아만과 인도양 연안의 항만과 연결하는 사업이다. 이 회랑의 동부 노선은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이란 철도망으로 연결되는 철도운송을 포함한다. 카스피해 해상운송과 연계된 복합운송의 활성화, 중앙아시아와 연계한 중국-유럽간 통과 물동량 유치가 주된 관심 사항이다.

향후 중앙 유라시아를 지배하려는 강대국 간의 경쟁은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현재는 러시아가 독립국가연합, 유라시아경제연합 상하이협력기구 집단안보조약기구 등 이 지역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다중 협력 플랫폼을 갖고 있지만 상대적 우위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다극화 시대로의 진입과 글로벌사우스의 부상은 러시아에게도 도전이다. 중앙아시아의 새로운 지역 정체성 형성과 역내 국가들의 외교 다각화에 민활하게 대응해야만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원용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