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시위, 미국 뒤흔든 분열의 서막
트럼프와 책사 밀러의 정치갈등 설계 …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연료 구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시작된 이민 단속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에 심상치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수일째 이어지는 시위는 단순한 거리 충돌을 넘어 미국 사회 내부의 이념 대립과 권력 투쟁, 민주주의에 대한 구조적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갈등의 중심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책사 스티븐 밀러가 있다.
시위는 6월 초 캘리포니아주가 연방정부의 불법 이민자 대대적 단속에 반기를 들며 본격화됐다. LA 시민 수천 명이 거리로 나서 평화 시위를 벌였지만, 곧 극단적 양상으로 변했다. 일부 시위대가 도심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상점 약탈과 차량 방화 등이 발생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LA 경찰국은 10일(현지시간) 기준 통금령 위반과 불법 점거 등을 이유로 시위 참가자 197명을 추가로 체포했으며, 지난 5일간 누적 체포 인원은 수백 명에 달한다.
같은 날 캐런 배스 LA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LA 다운타운 주요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령을 발효했다. 밤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 외출이 제한되며, 위반자는 체포 대상이 된다. 시장은 “지난밤 23개 상점이 약탈당했고, 도심 전체가 낙서와 파괴로 황폐해졌다”며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강경조치 기획자는 스티븐 밀러=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강경한 대응에 나섰다.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협의 없이 주 방위군 4000명과 해병대 700명을 LA 시내에 배치한 것. 그는 자신의 SNS 플랫폼 ‘트루스 소셜’을 통해 시위대를 “돈을 받은 반란군(paid insurrectionists)”이라 부르며 “LA는 외부의 적에게 점령당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를 “대통령 권한 남용과 헌법 질서의 정면 충돌”로 분석했다.
이 같은 강경 조치의 기획자는 트럼프 정부의 이민정책을 설계한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 부비서실장이다. 그는 ‘미국은 미국인을 위한 나라’라는 슬로건 아래, 무슬림 입국 금지, 대규모 추방 작전, 국경 장벽 건설 등을 주도했다. 이번에도 그는 시위를 국가 안보 위협으로 몰아가며, 정규군 병력 투입을 정당화했다. 나아가 밀러는 최근 발언에서 해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의 중단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는 “국가가 개인을 체포할 경우 구금의 정당성을 법원이 심사할 수 있도록 한 헌법적 권리”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가장 기본적인 사법 보호 장치 중 하나로, 이를 중단하겠다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기초를 흔드는 선언에 가깝다.
그럼에도 트럼프 진영은 LA 시위를 ‘침공’으로 규정하며 지지층 결집에 나섰다. 문제는 실제 통계와 이런 주장 사이에 뚜렷한 괴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WP는 국토안보부 자료를 인용해 캘리포니아 불법 이민자 수가 2010년 290만명에서 2022년 260만명으로 줄었으며, 특히 멕시코 출신 이민자는 120만명까지 감소했다고 밝혔다. 퓨리서치센터는 “대다수 이민자는 범죄자가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온 가족 단위 노동자들”이라며 트럼프 측 주장을 반박했다.
◆‘통치 실험’ 전미 반격으로 번지나= 상황이 격화되자 10일 저녁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전국에 생중계된 연설에서 “민주주의가 우리 눈앞에서 공격받고 있다”며 호소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난독증으로 인해 평소 공식 연설을 자제해온 뉴섬 주지사가 자막 기기 없이 연설에 나선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는 “포위된 LA 도심에서 실제로 체포되는 이들은 정원사, 접시닦이, 일용직 노동자”라며 “트럼프는 가장 약한 이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은 단지 캘리포니아의 문제가 아니라, 곧 미국 전체의 위기”라고 경고했다.
뉴섬은 지난 9일 주지사 동의 없이 군 병력을 투입한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위법 소송을 제기했고, 10일에는 LA 내 군 배치를 중단시키기 위한 긴급 가처분 신청도 법원에 제출했다. 정식 심리는 12일 열린다.
시민단체 프리 프레스(Free Press)의 노라 베나비데스는 “허위정보는 평화 시위의 정당성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분열시키는 전략적 무기”라고 말했다. 이를 입증하듯 ‘민주당이 배후에 있다’, ‘소로스가 폭동을 조장한다’는 음모론은 공공기관이나 언론사를 가장한 SNS 계정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확산됐다.
따라서 이번 LA 시위는 단지 이민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미국 정치가 어디까지 파괴적 갈등을 허용하고, 권력이 어디까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다. 진실보다 선동이 앞서고 법보다 충성이 우선되는 구조 속에서 트럼프와 밀러는 의도적으로 갈등을 키웠고 그 전략은 LA 거리에서 현실이 됐다. 더구나 그 불씨는 미국 전역 다른 도시로, 더 넓은 정치 지형으로 번지고 있다는 평가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