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대출’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 구속

2025-06-12 13:00:03 게재

금감원 수사 의뢰한 불법 대출 혐의 관련

검찰, 4월 법원서 영장 기각 이후 재청구

법원 “증거 인멸할 우려 및 도망할 염려”

882억원에 달하는 부당 대출을 실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IBK기업은행 전·현직 직원이 영장 재청구 끝에 구속됐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박정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오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배임) 등 혐의를 받는 전·현직 직원 A씨와 B씨에 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뒤 “증거 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 1월 239억5000만원 규모에 달하는 배임 사고가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금감원) 현장 검사 실시 결과 642억원이 늘어난 882억원 상당 부당 대출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 같은 정황을 포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기업은행에 14년간 근무한 A씨는 퇴직 후 부동산개발업을 하며 7년간 785억원의 불법대출을 받았다. 기업은행 현직 심사역이던 아내와 한 지점장의 도움을 받아 자기자본 없이 지식산업센터 신축을 위한 토지매입비(64억원)와 공사비(49억원)를 조달했다.

이후 해당 지식산업센터가 미분양되자 A씨는 고위 임원에게 청탁해 기업은행을 입점시킨 뒤 이를 매각했다. 해당 임원은 실무진 반대에도 네 차례나 재검토를 지시하며 입점을 강행했다. 해당 임원은 자녀를 A씨 소유 업체에 취업시킨 뒤 급여 명목으로 6700만원의 대가까지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기업은행 전현직 임직원과 인맥을 쌓기 위해 5개의 사모임에 참여했고, 다수 임직원에게 골프접대를 했다. 일부 임직원 배우자를 자신이 실소유한 법인의 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부당대출에 연루된 기업은행 관계자 8명은 이 과정에서 총 15억7000만원의 금품을 수수했다.

A씨는 다른 부동산 개발사와 협력해 미분양 상가에 대한 부당 대출을 알선한 정황도 드러났다. 심사센터장 B씨 등은 허위 매매 계약서를 제출받아 부당 대출을 승인했고, 대출 알선 대가를 수수했다.

은폐·축소 정황도 드러났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A씨 입행 동기의 비위 행위를 제보받아 자체 조사해 다수 지점과 임직원이 연루된 사실을 인지했다. 그러나 금감원에 이를 개별 지점의 일탈로 축소 보고했다. 이후 금감원 검사가 본격화하자 자체 조사 자료와 메신저 기록을 삭제한 정황도 확인됐다.

이 같은 의혹과 관련해 금감원의 수사 의뢰를 받은 검찰은 지난 3월 서울과 인천 등에 있는 기업은행 사무실 20여곳을, 4월에는 기업은행 본점과 대출 담당자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며 대출 심사 자료를 확보했다. 이어 관련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이어왔다.

수백억원대 부당대출 의혹을 받고 있는 IBK기업은행 직원 B씨(왼쪽)와 전직 직원 A씨가 11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검찰은 이들을 포함한 기업은행 전·현직 직원들이 불법적으로 대출을 진행하고 이 과정에서 각종 청탁과 금품을 받았다고 의심한다.

검찰은 지난 4월에도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두 피고인에 대해 제기된 혐의사실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A씨에 대한 영장 기각 사유로는 “전반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하고 있다”면서 “사기죄의 경우 법리적인 면에서 일부 증거위조 교사죄의 경우 공모 여부에 대해 각 다툼의 여지가 있고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B씨에 대해선 “각 신용장 발행, 대출, 어음할인 과정에 관여한 다수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비춰 볼 때 그들의 진술이나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피의자가 대출과정에 관여한 경위, 정도나 범의를 영장청구서 기재 내용 그대로 인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후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후 범행 액수가 큰 점 등을 고려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이에 대해 기업은행 관계자는 “피의자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당행은 검찰의 추후 요청이 있을 시 성실히 수사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지난 3월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해 외부인사를 통해 견제와 감시를 하고 내부통제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IBK 쇄신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노조는 경영진의 자성을 강조하며 쇄신안을 비판하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쇄신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고 말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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