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내수시장 진작이 어려운 까닭
1990년대 이후 수출과 투자주도 성장을 해오던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로 수출시장이 침체되자 2009년 소비를 내수확대의 중심축으로 명시하며 4조위안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소비가 활성화되자 소비주도형 성장전략을 추진했다.
2020년에는 트럼프정부의 대중견제에 대응해 내수중심 성장전략인 쌍순환전략을 발표했고 2022년에는 ‘내수시장 확대 전략(2022~2035년)’을 발표, 2035년까지 소비의 비중을 60%까지 높이기로 했다. 최근 중국의 확장적 통화정책, 이구환신 등 소비촉진정책, 호구제도 개혁과 의료 교육 혁신을 담은 신형도시화 추진 등이 대표적인 소비진작정책이다.
이러한 내수확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간소비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기준 39.6%로 미국 68%, 일본 53% 등 서구의 50~60%에 비해 낮다. 정부부분의 보건 교육 치안 등 공공소비는 14.3%로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민간소비를 성장의 주된 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정책의 틀을 혁신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공급에 치중하고 소비는 통제하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잔재부터 떨쳐야 한다. 소비 진작은 없이 공급만 우선시하는 자기완결적 공급망 구축은 기대와 달리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 경제자립을 이루려는 공급망 완비 정책은 2015년의 ‘중국제조 2025’부터 최근 ‘신질생산력’까지 지속되어 기술자립과 산업발전의 병목을 해소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수출만 늘이고 수입은 줄이는 공급망 강화는 대외관계에 긴장을 키웠다. 후발국은 석유 광물 등 원자재만 수입하고 수출산업 육성을 위축시켰으며. 선진국은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어나게 되어 공동번영이 아닌 인근궁핍화 정책이 되고 있다.
민간 역량 위축해서는 소비주도성장 어려워
제2의 경제대국인 중국 입장에서 내수확대 없이 공급만 키우는 발전전략은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 내수주도형 성장전략으로의 전환은 국내 경기회복을 넘어 타국의 내수시장 진출 확대로 이어져 무역마찰을 해소하고 상호윈윈으로 나아가게 한다.
소비주도성장이 지체된 또 다른 원인으로 민간의 소득창출역량을 강화하는 노력 대신 생산된 제품의 소비를 촉진하는데 정책의 주안을 둔 점을 들 수 있다. 개혁개방 이전 ‘궁핍의 시대’를 종식하고 개혁개방 이후 ‘기본수요충족(溫飽)’을 거쳐 ‘생활안정(小康)’ 단계로 발전을 이끈 주역은 철밥통 국유가 아닌 ‘경제하려는 의지’가 충만한 민간이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소비의 주체인 민간의 활력을 억제하고 국유가 주도하는 시대로 회귀하면서 소득과 소비가 위축되어 내수시장의 침체가 나타났다.
내수시장이 침체된 원인으로 개인자산의 80%를 차지하는 부동산의 가격폭락으로 인한 소비위축을 들기도 한다. 골드만삭스는 주택가격의 50% 하락을 전제로 한 주택재고의 적정관리 비용이 7조7000억위안(14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았다. 이처럼 막대한 재원의 투입이 어려운 현실에서 부동산 시장의 회생을 통한 소비심리 회복은 사실상 요원하다.
내수시장 진작의 핵심은 일자리 창출에 있다. 취업의 80%를 만들어내는 민간기업이 역동성을 발휘하도록 각종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 부가가치가 높고 일자리 창출이 많은 IT 예능 교육 금융 등의 민간 창업 활동이 데이터 보안, 알고리즘 규제, 플랫폼 독점 방지 등 각종 사회통제차원에서 통제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문화산업은 콘텐츠 검열, 연예 활동 제약에 의해, 교육산업은 사교육 규제 조치로 인해 위축되어 수많은 청년들이 음식배달 택배 호출기사 등 긱서비스에 종사하고 있다.
경제발전 틀 혁신하는 전략적 결단 필요
소비진작을 위해 국가총생산의 배분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몫도 지금보다 늘여야 한다. ‘자본 먹는 하마’인 인프라 투자나 과도한 산업보조금을 줄여 조세감면 고용지원 등으로 소득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국가가 돈을 풀어야 디플레이션이 극복될 것이라는 주장이 중국내에서 대두되는 배경이다. 의료 복지 등 사회보장지출의 확충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줄여 소비심리도 회복시켜야 한다. 관행적으로 국방과 치안 등 체제유지예산을 민생예산보다 우선하던 재정운용도 개선해야 한다.
소비주도성장으로의 전환에는 경제발전의 주역과 국가재정지출의 틀을 혁신해야 하는 전략적 결단이 필요하다. 국가의 통제력 유지 필요성과 소비주도성장의 불가피성 사이의 긴장을 해소하고 새로운 균형을 모색할 때 민간의 창의성과 시장의 효율성이 발휘되는 견고한 성장이 정착될 것이다. 이창열
한국통일외교협회 부회장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