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0%대 성장률의 경고

2025-06-13 13:00:03 게재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대폭 낮췄다. 이는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보여주는 징후다. 1950년 이후 한국이 1%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한 해는 단 다섯 번뿐이며 모두 전쟁, 외환위기, 팬데믹 등 외생적 충격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외부 충격 없이 0%대 성장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명백한 대내외 위기가 없었어도 0% 성장으로 주저앉았다는 사실이 더 뼈아프다. 그만큼 현재의 성장둔화는 뿌리 깊은 체질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은이 밝힌 성장률 하락의 주요 원인은 건설(-0.4%p), 수출(-0.2%p), 소비(-0.15%p) 순이다. 특히 건설 부문의 부진이 압도적이다. 건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14%에 불과하지만 하락 기여도는 절반에 가깝다. 부진은 하루아침에 온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진 부동산 호황기 특히 지방 위주의 무리한 주택공급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이어졌고, 지금은 건설사 줄도산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에 의한 강제적인 구조조정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성장률 하향 조정 발표 당시 “건설경기 부진”을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반복되는 부양책, 부동산 의존의 그늘

한국경제는 이미 수차례 부동산 위주 정책의 부작용을 경험했다. 건설업은 단기간에 고용과 투자를 자극할 수 있어 역대 정권마다 경기부양 카드로 활용해왔다. 그러나 단기적 효과에만 매달린 결과 반복되는 가격 불안과 투기 과열, 정책 신뢰도 저하였다. 한국의 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훨씬 웃돈다. 특히 1995~2006년 사이에는 19.22%로, OECD 평균인 11.67%보다 1.6배나 높았다. 그만큼 건설에 의존해 성장을 끌어올렸고, 그 후과는 고스란히 한국경제의 체질에 남아있다.

김대중정부는 IMF 외환위기를 극복했지만 이후 침제극복의 명분으로 분양가 자율화, 양도세 면제, 분양권 전매 허용 등 부동산 규제 완화를 단행했고, 주택시장 과열로 이어졌다. 노무현정부는 투기억제를 시도했지만,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풀린 토지보상금이 오히려 전국적인 부동산값 상승을 불렀다.

이명박정부 역시 경기 회복을 위해 건설사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투기지역 지정 완화 정책을 폈다. 박근혜정부는 아예 노골적으로 ‘빚 내서 집 사라’식의 주택 대출 금융완화 정책을 폈고, 문재인정부는 과도한 세금정책과 주택공급 규제 등으로 부동산 시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단기 목적은 이루었지만 투기 심화와 자산 양극화, 금융 불안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지금 한국경제가 맞닥뜨린 0%대 성장은 급성 쇼크가 아닌 만성적인 저성장 구조의 결과다. 고령화, 생산성 둔화, 노동시장 경직성, 혁신 부진 등 구조적 병폐가 누적된 결과가 표면화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률 0%대는 단지 수치가 아니다. 한국경제의 한계 신호이며 이제는 진짜 ‘새로운 해법’이 나와야 함을 의미한다.

0%대 성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출발하는 이재명정부의 최우선 국정 과제는 ‘경제회복’이겠지만 그것이 ‘건설로 끌어올리는 회복’이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성과를 임기 내에 보여줘야 한다는 조급함이 다시 건설 부양의 덫으로 이어진다면 한국경제는 혁신을 통한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체질개선 없이 성장 없다, 근본적 해법 필요한 때

지금 필요한 것은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다. 투자와 혁신,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 인구 감소와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구조적 대응이 함께 가야 한다. 탄력적인 노동시장을 통해 청년층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인공지능(AI) 경제로의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재명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방향은 일단 시장에 긍정적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극복을 내걸고 상법개정과 기업지배구조 개선, 주주가치 제고 등을 통해 자본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다. 이창용 총재는 이번 GDP 조정 과정에서 소비요인을 –0.15%로 내렸는데 만약 코스피가 10% 올라간다면 소비에서의 마이너스를 상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5000시대’를 공언한 것이나 주식시장을 투자할 만한, 길게 보면 괜찮은 시장으로 만들겠다는 발언 등은 포인트를 잘 잡은 것으로 보인다. 기존 부동산과 재벌경제로는 한국경제의 미래를 열어갈 수 없다. 벤처 혁신으로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이런 구조 개혁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추진돼야 할 과제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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