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이복현 금감원’ 새정부서 역풍 부나
‘불법대출 은폐 의혹’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 검찰에선 무혐의 처분
감사원, 금융사 검사 중 일부 내용 확정적 발표 행태 위법성 검토 중
이 전 원장, 김상희 전 의원과 민사소송 중 … 업무추진비 공개 판결
지난 5일 3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잇달아 곤혹스런 상황에 직면했다. 이 전 원장이 사실상 주도한 조병규 전 우리은행장의 ‘불법대출 보고의무 위반 혐의’가 친정격인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특히 감사원이 조 전 행장 혐의 사례와 같이 검사가 진행되는 과정에 일부 내용을 중간발표 형식으로 공개한 이 전 원장 재임시절 행태의 위법성 여부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요구에도 이 전 원장이 내놓지 않았던 업무추진비를 조목조목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까지 나왔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조사1부(부장검사 김수홍)는 조 전 행장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 ‘보고의무 위반’ 혐의에 대해 최근 무혐의 처분했다.
12조는 금융기관장이 임직원이 직무에 관해 위법한 행위를 한 정황을 알았을 때 지체 없이 수사기관에 알리도록 하고 있다.
◆이복현 원장도 검사 내용 사전 공개 = 앞서 검찰은 손태승 전 회장을 지난 1월 21일 배임 및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손 전 회장은 2021년 9월부터 2023년 8월까지 처남 김씨가 운영하는 회사 등에 517여억원의 불법 대출을 해준 혐의를 받는다. 손 전 회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해 8월 우리은행 경영진을 직접 거론하며 “금융사고 미보고 등 사후대응 절차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전 원장은 금감원 임원 회의에서 우리은행 경영진의 늑장 보고를 지적하며 “우리금융이 보이는 행태를 볼 때, 더는 신뢰하기 힘든 수준”이라고 발언했다.
우리은행에 대한 금감원 검사는 당시 한창 진행 중이었다.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이 전 원장까지 나서 조 전 행장이 일부러 부당대출 사실을 감춘 것처럼 지목한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금감원이 애먼 사람을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전 행장의 위법 혐의를 조사하는 것은 금감원의 역할이지만 검사가 계속되는 시점에 중간발표 형식으로 사실상 범법자로 몰았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 원장과 금감원이 과거 검찰에서 피의사실을 암암리에 공개해 수사 대상을 압박하듯이 중간 결과 발표나 간담회 등을 통해 검사 내용을 흘리며 금융사 등을 강하게 압박한 사례가 여러 건이다.
특히 재계에서는 2023년 카카오 창업주인 김범수 전 의장을 포토라인에 세운 것이 이 전 원장 부임이래 검찰화된 금감원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 검사 결과가 중간에 나오면 잘못이 확정적인 것처럼 돼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번 우리은행 사건을 계기로 새정부 금감원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복현 금감원’ 특유의 제도였던 검사 결과 중간발표가 논란의 대상이라는 점이다. 자칫 새정부 금감원에 역풍으로 돌아올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금융위원회법 제35조 2항은 ‘원장·부원장·부원장보 및 감사와 직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사람은 직무상 알게 된 정보를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거나 직무상의 목적 외에 이를 사용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비밀 유지 의무 조항이 있다. 그동안 금감원도 “검사 결과 조치가 진행 중인 금융사에 대해서는 공시되지 않는다”며 비밀 유지를 강조해왔다.
통상 검사 결과 확인된 사항은 법규 위반 소지 등을 검토하고, 금융위원회 유권해석을 거친 후 위법사항에 대해 제재한다. 잠정 결과는 이 과정에서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는 구조다.
감사원은 이미 금감원의 검사 결과 중간발표에 문제가 없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위법 행위 등이 밝혀지면 이 전 원장과 금감원이 금융사들을 향해 휘둘렀던 칼날이 자신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3억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 중 = 이 전 원장 개인은 이미 사법적 위험에 노출된 상태다.
2023년 불거진 ‘라임펀드 특혜성 환매’ 의혹을 놓고 김상희 전 국회의원이 이 전 원장을 상대로 3억원 규모의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계속되고 있다.
해당 소송은 갑작스러운 환매 중단으로 1조원대 피해를 일으킨 이른바 ‘라임 사태’와 관련해 김 전 의원이 당시 미래에셋증권으로부터 환매 직전 2억원 규모의 투자금 일부를 회수한 사실이 금감원 조사로 드러나면서 시작됐다. 금감원은 이를 특혜성 환매라고 지적하며 ‘다선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을 보도자료에 포함했다.
이 전 원장측은 김 전 의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김 전 의원측은 사실상 특정한 것이란 입장이다. 김 전 의원은 또 이 원장을 허위공문서 작성 및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소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지난해 6월 제재심의위원회에서 라임 펀드 환매성 특혜 의혹을 받는 미래에셋증권에 대해 제재가 불가하다고 결론지었다. 김 전 의원에 대한 환매가 특혜성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도 업무추진비 공개 = 또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이정원)는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가 이 전 원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해 8월 이 전 원장의 업무추진비 상세내역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다른 공공기관들은 △사용 일자 △사용 금액 △사용 장소(가맹점명) 등 세분화해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있다. 반면 금감원은 월별 건수·금액 등만 간략히 공개하고 있다. 공개 시점도 1년에 한차례뿐이라 금감원장이 현시점에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 부정이 있어도 조처를 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소송 과정에서 금감원은 업무추진비 비공개 사유로 “(업무추진비) 집행장소를 공개하면 언론 취재, 민원인의 집회·시위로 해당 업장에 영업방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보공개법은 “공개될 경우 국민의 생명·신체 및 재산의 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에 대해 비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원장의 업무추진비 내역이 여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금감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22년 6월 1일부터 2024년 4월 30일까지 이 전 원장이 지출한 업무추진비 집행내역을 △사용일시 △집행처이름(상호명) △집행처주소 △집행금액 △집행인원 △결제방법 △집행비목으로 나눠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업무추진비는 대통령실도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다.
장세풍·이경기·박광철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