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대법관 증원 반대한 판사 출신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
“대법관 증원 신중해야…증원 안해도 된다”
“대법관, 모든 사건에 관여하다보니 일이 많아졌다”
“대법원은 법률심으로 … 1·2심 확대 강화해야 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은 11일 내일신문과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이른바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사법부의 틀을 바꾸는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며 “대법관 증원 안해도 된다”고 밝혔다. 대신 현재 대법원의 재판 운영 시스템을 사실심이 아닌 본래의 법률심 위주로 바꾸고, 하급심(특히 1심)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대법원 과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대법관을 늘리는 것보다 1·2심 재판을 충실화하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대법관 대폭 증원만 이뤄지면 사법 체계가 흔들리고, 3심 사건이 더 늘어나 소송 비용과 부담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대법관 1명에게 해마다 3000여건이 넘는 사건이 배당되는 배경에는 대법관들의 태도도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가장 큰 문제는 대법관들에게 있다고 본다. 대법관들이 상고돼 올라오면 모든 사건에 다 손을 댄다. 대법관들이 많은 사건에 손을 대야 권한이 세진다고 보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다.

●대법관 증원법(법원조직법) 개정안에 반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하급심 재판을 충실화하고 강화해야 하는데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면 그만큼 보조 인력과 재판연구관도 늘어야 한다. 대법관이 많아지면 전원합의체 구성이 쉽지 않아 법령 해석 통일도 어려워진다. 원래 법 취지처럼 법률심으로서 법령 해석에 통일을 기하는데 집중하는 게 낫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대법관을 늘리지 않아도 된다. 운영을 효율적으로 해도 충분하다.
●대법관 업무가 과중해 상고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
1·2심은 사실심이고 3심은 법률심이다. 그런데도 대법원이 많은 사건을 끌어안고 있게 된 것은 사실상 사실심을 대법원으로 끌고 오기 때문이다. 지금은 교묘하게 ‘채증(採證) 법칙 위배’를 따진다는 명분으로 대법원을 사실심으로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이 많은 사건에 손을 대야 권한이 세진다고 보는 것 아닌가. 대법관들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결단이 필요하다.
●대법관이 늘면 심리가 충실해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대법관이 늘면 3심까지 가는 사건이 지금보다 더 많아질 것이다. 1·2·3심을 다 거치게 하면 비용이 늘고 소송도 길어진다. 돈 없는 서민들에게 더욱 불리해지고 부자들에게 유리하게 된다. 지금 헌법재판소가 4심 역할을 하는 법안도 제출돼 있다. 대법관 증원으로 3심이 당연시되고 4심까지 가면 국민은 ‘소송 지옥’에 빠질 것이다.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건 1심을 충실히 해서 당사자들이 승복하고 끝내는 것이다.
●민주당이 대법관 증원을 지속 추진할 것으로 보는데
아쉽다. 헌법재판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하면서도 헌법기관으로서 권력기관의 절제, 권한행사의 절제를 강조했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국회 다수당이라고 법원에서 반대하는데 그걸 억지로 법안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지금은 야당이 아니고 여당이 됐다. 숙의(熟議) 과정이 필요하다. 국민적 동의와 여야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공청회도 필요하고, 법원측 동의도 받아야 한다. 국회가 사법부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것은 헌법기관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의 결단으로 사건수를 줄이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그래서 하급심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판사들에게 충분한 심리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또 본인들에게 증거 제출할 시간을 충분히 줄 필요가 있다. 그러면 승복률이 훨씬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지금은 판사가 어느 시점에 사건을 처리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장기 미제 사건이라고 해서 판사들을 관리하다 보니 빨리빨리 처리하게 된다. 하급심이 부실하다보니 상고심으로 몰리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본다.
●새로운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내놓을 생각은 없는지.
검토해볼 생각이다.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특정학교, 특정 나이대, 남성(서오남, 서울대 50대 남성)으로 너무 한쪽으로 몰리게 하지 말고 다양하게 구성해야 한다. 현재 재판연구관들을 모두 1심과 2심 법원으로 내려야 한다. 대법관들은 정말 자기들이 재판할 만큼만 하면 된다.
●민주당 내에서 소신 발언하기가 쉽지 않을텐데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민주당도 건강하게 운영할 수 있다.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문제다. 다양성이 있어야 건전한 정당 아니냐. 이런 내용을 (이재명) 대통령께서 수긍해 주니까 소신 발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정부 시절에 탄핵을 많이 할 때도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제동을 걸기도 했다.
박희승 의원은
1963년 전북 남원 출생. 전주고와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이재명 대통령과 같은 사법연수원 18기로 노동법학회 활동을 함께했다. 1992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임용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수석부장판사, 안양지원장 등을 지냈다. 2015년 퇴임하고 이듬해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됐고 지난해 22대 총선 때 전북 남원·장수·임실·순창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