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지주사 전환…창업가 지배 강화
그룹 모체, 도요타직기 상장폐지 추진 … 아키오 회장, 0.5% 지분으로 계열사 통제 논란
5년 연속 전세계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도요타자동차. 도요타 정기 주주총회가 지난 12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시 본사에서 열렸다. 이날 주총에는 지난해보다 40% 이상 많은 6752명의 주주가 참여했다.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이사 재신임안 표결에서 96.72% 찬성을 얻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사설에서 “도요타는 창업가 가문의 지배력을 키우는 결정을 했다”며 “그룹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요타 창업의 모체이고, 지금도 자동차 주식을 10% 가까이 보유한 도요타자동직기(직기)의 상장폐지를 통한 지배구조 개편 논란을 말한다.
계열사간 복잡한 상호출자 해소 나서
직기는 10일 주주총회에서 자동차 등 도요타 계열사가 제안한 주식공개매수(TOB)를 수용하기로 했다. 도요타 경영진이 구상하는 지배구조 개편 방향은 현재와 같은 계열사간 복잡한 상호출자를 해소하고, 지주회사를 통해 자동차를 비롯한 그룹 전체를 통제하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도요타부동산(부동산)과 아키오 회장은 각각 1800억엔(약 1조7000억원)과 10억엔(약 95억원)을 출자해 100% 지분을 가진 지주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여기에 자동차는 7000억엔(약 6조7000억원) 규모의 의결권 없는 우선주에 출자한다.
지주회사는 올해 12월쯤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TOB 방식으로 직기 주식을 매수할 계획이다. TOB 가격은 주당 1만6300엔(약 15만5000원)으로 상정하고 있다. 매수 자금으로는 총 4조7000억엔(약 45조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직기 주식의 42.0%에 해당한다. 여기에는 △부동산(5.41%) △도요타통상(5.07%) △덴소(4.92%) △아이신(2.18%) 등 계열사가 보유한 직기 지분도 포함된다.
아울러 자동차가 보유한 주식(24.6%)도 사들여 전체 주식의 2/3를 확보, 임시 주총을 열어 SPC와 직기의 합병을 의결한다. 이후 나머지 주식을 모두 매입해 상장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이 과정에서 자동차는 직기가 보유한 자사주(약 9.5%)를 3조2000억엔(약 30조원)에 매입한다. 이를 통해 자동차와 직기, 다른 계열사와 직기 사이 상호출자 관계가 해소된다.
도요타가 그룹내 자본관계 개편에 나서는 데는 복잡한 상호출자에 대한 투자자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는 최신호에서 “복잡한 상호출자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것으로 간주돼 투자자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며 “계열사간 주식 매각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성장분야에 자금을 투자하라는 기관투자자의 요구에 부응하는 결정”이라고 분석했다.
중장기적으로 변화하는 자동차산업 경쟁 구도에서 과감한 투자를 위한 빠른 의사결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해석도 있다. 도요타 한 간부는 “전기자동차(EV) 분야에서 중국과 싸움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누구의 지배 아래에 있든 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화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자 반발, 창업가 가문 지배 우려
이번 결정에 대해 반발과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영국 투자회사 애셋밸류인베스터즈(AVI)는 지난 5일 TOB 가격에 대해 “직기의 본원적 기업 가치에 비해 낮다”고 주장했다. 사카이 카즈나리 AVI 일본책임자는 “직기 주식의 40%를 도요타계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주주 구성에서 소수주주의 이익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국계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7000억엔을 투자하는 자동차가 의결권이 없는 주식에 거액의 자본을 묶어 둔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며 “엄청난 현금 흐름을 가진 자동차가 직기를 매수하면 간단한 데 이상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에 결정한 TOB 가격은 이달 3일 기준 시장가격(1만8400엔)을 10% 가량 밑돈다.
무엇보다 이번 결정에 대한 우려는 아키오 회장으로 집중되는 도요타 가문의 지배력 강화이다. 특히 자동차가 지주회사에 7000억엔을 내면서 의결권없는 우선주에 출자하는 문제다. 지주회사 의결권은 부동산(99.5%)과 아키오 회장(0.5%)이 갖는다. 부동산은 도요타 그룹 15개사가 출자한 비상장회사이다. 아키오 회장은 자동차와 함께 부동산 회장도 겸하고 있다. 사실상 아키오 회장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지배구조가 완성되는 셈이다.
자동차가 우선주에 출자하는 이유에 대해 야마모토 경리본부장은 “우선주 배당을 통해 연 8.6%의 수익률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등으로 구성된 도요타 자문위원회도 이번 결정에 대해 “자동차의 희생으로 아키오 회장이 부당하게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자문위는 또 우선주 출자 결정 과정에서 아키오 회장의 관여는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동차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간부는 “(지주회사 설립과 관련) 부동산과 아키오 회장만으로는 거액의 자금을 준비할 수 없다”며 “자동차의 지원을 통해 도요타 가문의 오너십을 강화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즈키 카즈노리 와세다대학 교수는 “자동차는 경영권을 갖지 않는 대신 우선주 배당에 따른 자금을 확보하고, 경영권은 창업가 가문으로 넘기는 선택을 한 것”이라며 “자동차가 경제적 효과를 단기적으로 실현하지 못하면 주주소송 등 반발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아키오 회장은 최근 사내 유튜브 방송에 나와 “이번 결정은 ‘도요타다움’을 찾기 위한 것”이라며 “도요타는 창업가 가문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상장회사 상호출자 10%로 감소
도요타 그룹 지배구조개선의 핵심인 직기는 창업자인 도요타 사키치가 자신이 발명한 자동방직기 제조와 판매를 위해 1926년 창업했다. 이후 1937년 직기의 사내 자동차 부문이 분사해 도요타자동차공업이 설립됐다. 이 회사가 현재의 도요타자동차이다.
도요타그룹은 현재 다이하츠와 히노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와 덴소, 아이신 등 부품사를 비롯해 15개 정도의 핵심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이들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지분을 가진 자회사 및 손자회사 개념의 관련 회사만 740개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핵심 8개 계열사는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총매출이 연 87조엔(약 830조원)을 넘는다.
직기는 도요타 계열 각사의 지분관계에서 핵심이다. 지금도 자동차 주식을 9.5% 가량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직기의 수익에서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0%가 넘는 1069억엔(약 1조원)에 이른다. 지게차 생산으로 세계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지만, 최근 5년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4.8%로 동종업계 평균(13%)을 크게 밑돌아 행동주의펀드 등 투자자로부터 압박이 거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올해 2월 말 도요타가 음악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회견에서 ‘도요타그룹’이라는 그동안 없던 로고가 걸렸던 점을 주목했다. 이 때 아키오 회장은 ‘도요타그룹 대표’로 등장했다. 도요타그룹이라는 별도의 법인이 없고 복잡한 상호출자를 통한 우호지분으로 의사결정을 하던 것에서 그룹의 ‘수뇌’라는 상징적 의미를 불러왔다. 이 신문은 “아키라 회장은 지주회사 지분 0.5% 자본참가로 창업가 본가의 맥을 잇게 됐다”고 했다.
한편 일본 기업들은 2차대전 패전 이후 재벌이 강제적으로 해산된 이후 △계열사 상호간 △거래기업 상호간 △주거래은행 등에 의한 상호출자로 지배구조를 이어왔다. 아베 정권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자본시장 밸류업 차원에서 ‘안정주주’로 상징되는 상호출자 해소에 적극 나서라고 권고했다.
노무라자본시장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상호출자 비중은 1990년 전체 상장기업의 50%가 넘던 것에서 2022년 기준 11.7%까지 줄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도요타의 지배구조 재편은 일본 기업의 상호출자 해소가 최종적인 단계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며 “도요타가 100년에 한번 변혁기를 맞아 이례적으로 창업가 가문으로 지배력을 집중하고 있다. 성장을 지속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