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80대 주민들도 ‘이성친구’ 필요합니다"
종로구 37명 신청해 7쌍 맺어져
고령친화도시 주력사업 중 하나
30도 가까운 뙤약볕이 내리쬐던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 무계원. 고즈넉한 한옥 마당에 하얀 그늘막이 여럿 세워지고 그 아래 탁자와 의자가 놓였다. 탁자에는 소담한 꽃장식과 함께 장미며 백합 등 꽃이름을 딴 명패가 있다. 60~80대 남·여 노인 3~4명씩 각 탁자에 둘러앉아 냉차를 마시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대부분 이날 처음 마주한 이들이다.
16일 서울 종로구에 따르면 지난 12일 노년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이성 친구 찾기를 지원해 당일 7쌍이 맺어지는 성과를 거뒀다. ‘종로 굿라이프 챌린지’라 이름 붙인 ‘2025 어르신 솔로 프로젝트’다.

지난해 10월 흥선대원군 사저로 잘 알려진 운현궁에서 ‘어르신 친구 만들기’를 진행했는데 6쌍이 맺어졌고 추가 행사를 희망하는 주민들 뜻에 따라 올해 무계원에서 자리를 마련한 참이다. 정문헌 구청장은 “100세 넘어 110세 시대를 향하고 있는데 장수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이 더욱 중요하다”며 “지자체들에서 청년들 만남을 주선한다는 얘기를 듣고 어르신들이 ‘우리도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지난 가을 처음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고립 해소와 새로운 관계를 희망하는 65세 이상 홀몸주민 40명을 지난달 공개 모집했다. 여성은 20명이 선착순 마감됐고 남성은 행사 당일까지 17명이 신청했다. 12일 무계원에 모인 주민들은 나이와 실명을 공개하지 않고 스스로 정한 별명을 적은 이름표를 달고 소통했다. 그림을 그릴 때 낙인에 사용하는 ‘심당’, 집 근처에 흐드러지게 피는 ‘아카시아’, 좋아하는 노래를 부른 가수 이름을 딴 ‘이성애’ 등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스포츠맨’과 정태춘 노래를 좋아하는 ‘춘’도 있다,
희극인 심현섭씨가 사회를 맡아 어색함을 덜도록 도왔다. 모둠별 만남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며 ‘인생 영화’ ‘취미 생활’ 등 주제도 제시됐다. 공기와 물이 좋은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 불교문화 가득한 일본 교토 등 주제와 연관된 이야기도 나왔지만 뜬금없이 복지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우리 복지관은 밥이 참 좋다”며 “음식점에서 먹으려면 1만2000원은 줘야 할 것”이라고 좌중에 웃음을 안겼다. ‘요즘 아이들’이 화제에 오르기도 하고 급기야 첫사랑 이름도 공개한다.
공무원들은 시원한 음료를 챙기고 즉석 사진을 찍어주며 분위기를 띄웠다. 모둠 대화에 이어 남녀가 서로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가 1대 1 대화를 나누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난다. 마지막으로 1순위와 2순위까지 희망하는 상대를 적어낸 결과 7쌍이 맺어졌다. ‘여름’씨와 짝이 된 ‘촌놈’씨는 “뜻밖의 자리에서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을 만나 반갑다”며 “옛사랑끼리 만났다 생각하고 오래 잘 지내자”고 호소했다. 스스로 올드미스라 소개한 ‘이성애’씨는 “그간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사람이 없었다”며 “오늘 마음의 꽃다발을 받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종로구는 하반기에는 가을소풍 형태로 또한번 자리를 마련할 예정이다. 동시에 고령친화도시 조성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지난 2023년 세계보건기구 고령친화도시 국제네트워크에 재가입한 구는 ‘활기찬 노년’ ‘지역사회 계속 거주’ ‘세대간 화합’을 기본으로 ‘고령친화도시 본(本)’이 되는 도시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홀몸노인 친구 만들기는 올해 주력 사업 중 하나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어르신들이 의지할 만한 대상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삶의 활력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라며 “어르신들이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좋은 정책을 꾸준히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