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불법체류 단속에 산업현장 ‘직격탄’

2025-06-18 13:00:02 게재

농장·도축장·건설현장

급습해 수십명씩 체포

공장 가동률 15%로 추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불법체류자 대규모 추방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경제적 현실과 충돌하고 있다. 농장, 도축장, 호텔 등 주요 산업에 불법체류 이민자 노동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는 까닭이다.

지난주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육류 가공업체 글렌밸리푸드에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이 들이닥치면서 직원 약 75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생산라인 인력의 절반을 차지한다. 17일자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다음 날 공장은 겨우 15% 수준의 가동률을 유지했고, 최소 인력으로 주문을 겨우 소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리 로어 최고경영자(CEO)는 “이민자 없이는 이 산업이 존속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추방을 통해 미국 노동자 일자리 회복과 임금 상승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하다. 특히 농업, 축산, 숙박업 등은 수십 년간 불법체류 이민자에 의존해 왔으며, 이들의 대체 인력을 단기간에 찾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정부 내 엇박자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토안보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주 지시에 따라 식당, 호텔, 농장 등에서의 체포 작전을 중단하라고 ICE에 지시했다. 범죄 이력이 있는 불법체류자에 우선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 장관인 크리스티 놈은 주말 사이 ICE에 보낸 서한에서 “전국적으로 체포·추방 작전을 대폭 강화하라”고 해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놈 장관은 “이는 협상의 여지가 없는 국가적 우선 과제”라며, ICE 요원들에게 “성과는 체포 실적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업계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미국 호텔협회(AHLA)는 숙박업의 인력난을 호소하며 단기 취업비자 확대를 요청했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불법체류자는 전체 노동력의 약 4.4%를 차지했으며, 조경업(19%), 농업(17%), 도축(16%), 건설(13%) 등 특정 업종에서는 그 비중이 훨씬 높다.

실제로 ICE는 지난 2월 뉴저지의 한 물류창고에서 16명, 5월에는 푸에르토리코 호텔 공사 현장에서 53명을 체포했다. 지난달 말에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의 한 유명 레스토랑에서 단속이 이뤄져 직원 19명이 허위 서류를 제출한 혐의로 체포됐다. 2025년 상반기 들어 호텔, 농장, 도축장 등 이민자 의존도가 높은 업종이 표적이 되고 있다.

뉴욕주의 농장주 론 로빈슨은 3월 단속 이후 가족들이 하루 18시간 일하며 운영을 유지 중이라고 밝혔다. ICE는 여의도 면적의 11배에 달하는 그의 농장을 급습해 과테말라인 핵심 인력 8명을 체포했다.

플로리다 탈러해시의 한 대학 기숙사 건설 현장에서는 ICE, FBI 등 연방기관이 현장에 들이닥쳐 시민권자와 비시민권자를 분리해 점검했다. 175명 중 1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체포되면서 공사는 중단됐고, 콘크리트가 굳을 뻔한 위기에 직면했다. 현장 감독 조 칼리엔도는 “이들의 시급은 평균 20~50달러 수준”이라며 “이민자들이 없으면 공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 건설업계는 50만명 이상의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불법체류자들이 건설 현장에서 사실상 ‘필수노동력’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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