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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 전면적 혁신 필요하다

2025-06-19 13:00:04 게재

지난 10일 공수처가 ‘채 해병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대통령기록관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4일 제20대 대통령기록물의 지정기록물이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 완료된 지 채 일주일도 안 돼 봉인이 풀리고 수사기관이 내용을 들여다본 것이다.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 내란특검 김건희특검 채해병특검 등 이른바 3대 특검의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이 사실상 예약돼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지정기록물제도는 대통령이 특별히 지정한 기록을 장기간 보호함으로써 후대를 위해 충실히 기록을 남기도록 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런데 이런 취지에 부합하는 성과는 이제까지 확인된 바 없고 오히려 대통령의 잘못을 은폐하는 수단이나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는 결과만 양산해 왔다.

이 제도를 창안하고 시행한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퇴임 후 쌀직불금이나 남북정상회담회의록 등과 관련해 지정기록물의 봉인이 해제되는 수난을 당했다. 문재인정부 시절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기록을 당시 윤석열 총장의 검찰에서 샅샅이 압수수색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기록 또한 윤석열정부 출범 1년 동안만 193일이라는 역대급 압수수색의 대상이 됐다.

줄줄이 압수수색 예약된 지정기록물

이쯤이면 지정기록물제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아무리 취지가 좋더라도 성과는 고사하고 부작용만 낳는다면 유용한 제도라고 하기 어렵다. 폐지하거나 전면적으로 고쳐 쓸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기록문화에 대한 국민적 이해 또는 사회적 합의 수준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기록은 위대함을 증거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파멸시키는 흉기가 될 수 있다. 정쟁의 도구나 정적을 제거하는 무기로 기록을 악용하고 그에 무관심하거나 그것을 지지하는 문화가 강력하게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지정기록물이라는 선의의 제도는 뿌리내리기 어렵다.

그 다음 걸림돌은 지정기록물을 자신의 잘못이나 치부를 감추는 수단으로 삼기에 유용한 환경이다. 지정기록물 대상은 국가안보 경제안정 정치혼란 사생활 등과 관련된 6가지 유형으로 대통령기록물법에 규정돼 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일 기록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하는 등 본질을 벗어난 제도 운용을 함으로써 책임회피 증거은폐 수단이 된 사례가 기억에 더 남는다.

윤석열정부의 대통령기록은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했다.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하라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도 이행하지 않을 정도로 막무가내였고, 비상계엄을 의결했다는 국무회의 회의록조차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12.3비상계엄 이후 대통령기록 관련 수많은 쟁점이 제기됐는데 그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파면된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을 대통령권한대행이 지정하는 문제였다. 파면된 대통령의 기록에는 잘못된 결정이나 행동, 범죄의 증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보호의 대상이 돼서는 안되는 기록이다.

세월호 참사 관련 대통령기록을 황교안 권한대행이 지정기록물로 지정함으로써 유가족의 진상규명 싸움 등 사회적 고통과 갈등이 11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상황을 우리는 겪고 있다. 또 내란 등의 범죄 증거 기록으로 가득한 윤석열 전 대통령기록을 역시 권한대행이 지정기록물로 봉인하는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파면된 대통령 지정기록물 보호할 이유 있나

국회는 3대 특검법을 통해 대통령지정기록물 열람 요건을 ‘국회의원 2/3 이상 동의 또는 관할 고등법원장의 허가’에서 ‘국회의원 3/5 동의 또는 법원 허가’로 완화했다. 대통령이 탄핵소추 의결을 받으면 ‘대통령기록관리특별위원회’를 구성해 기록물 보호 여부를 의결하도록 하는 등 탄핵된 대통령기록물의 봉인을 막는 대통령기록물법 개정안도 여러 건 발의된 상태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런 개선안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도 세웠으면 한다. 파면될 정도로 위법 행위가 중대하다면 증거은폐 우려와 기록물 봉인으로 인한 진상규명 장애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이 경청할 만한 내용이다. 공개되지 않아야 할 대통령기록물은 비밀기록 비공개기록물로 분류해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금이 대통령기록제도를 전면적으로 혁신할 기회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