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적어야 더 빨리 성장” 미 기업들 속속 감원

2025-06-19 13:00:08 게재

WSJ “기업성장 척도, 직원수 아닌 1인당 생산성”

인력을 줄여야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는 인식이 미국기업들에게 퍼지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등장 덕분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현지시각) 데이터 분석업체 ‘라이브데이터테크놀로지’를 인용해 미국 상장기업들이 지난 3년간 사무직종 인력을 3.5% 감축했다고 전했다. 또 지난 10년간 S&P500 기업 5곳 중 1곳이 인력을 줄였다.

WSJ는 “현재 감원 흐름은 단순한 비용절감 차원을 넘어 조직철학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여준다”며 “예전에는 인력확충이 매출증가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의미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리더십의 문제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아마존부터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등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들 역시 ‘인원이 많으면 오히려 업무에 방해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최근 직원들에게 보낸 메모에서 “AI 확산으로 향후 수년 내 일부 직무는 사라진다. 신규사업마다 50명의 인원이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연례 주주서한에서는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것이 최고의 리더십”이라고 강조했다.

프록터앤갬블(P&G)은 이번달 비제조 부문 인력 15%에 해당하는 7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에스티로더와 데이팅앱 업체 ‘매치그룹’도 관리자급 인력 약 20%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최근 직원을 감축한 휴렛패커드 엔터프라이즈(HPE) CFO 마리 마이어스는 “슬림한 조직이 더 빠르다”고 말했다. HPE 임직원은 현재 5만9000명 이하다. 10년 전 분사 이래 최소 규모다.

BofA의 경우 2010년 전체 임직원이 28만5000명에 달했지만 현재 21만3000명으로 줄었다. 이 은행 CEO 브라이언 모이니핸은 “더 적은 인력과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달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기업은 경기불황 때 감원하고 경기회복 때 채용을 늘린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인력 감축은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증가한 시점에 발생했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 기업들의 이익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WSJ는 “기업들이 인력을 바라보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특히 중간관리자가 감원 타깃이다. 라이브데이터테크놀로지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중간관리자급은 6.1%, 임원급은 4.6% 감소했다. 직원관리 소프트웨어기업 ‘래티스’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 관리자 1명이 맡는 직속보고인원은 2020년 4.2명에서 2023년 5.1명으로 늘었다.

경영진과 투자자들은 이제 직원 1인당 매출에 주목하고 있다. 데이팅앱 기업 ‘그라인더’는 2022년 직원 1인당 연매출이 약 100만달러였지만 지난해엔 2배 이상 늘었다. 고압필터 샤워기 스타트업 ‘졸리’는 5명의 직원으로 연 5000만달러 매출을 올린다. 이 기업 CEO 라이언 바벤지엔은 “과거에는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5명 이하로도 1억달러 매출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시대”라고 말했다.

WSJ는 “과거에는 사람을 많이 뽑는 것이 기업 성장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매출을 내는 것이 성장의 기준이 되고 있다”며 “작은 팀으로도 대기업 못지않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전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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