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투자금 포기에 국민연금도 손실

2025-06-19 13:00:34 게재

한창민 의원 “보통주 투자액 295억원 전액” … 10만명 서명 전달 노조, 정부 개입 요청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소유주 MBK파트너스가 매각을 위해 지분 2조5000억원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계획이 현실화되면 MBK를 통해 홈플러스에 투자된 국민연금의 보통주 295억원도 사실상 증발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한창민 의원(사회민주당)은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MBK가 보유한 보통주를 무상 소각할 경우 국민연금의 손실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MBK는 지난 13일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이 이뤄지면 보유한 2조5000억원 규모의 보통주를 무상 소각하는 손실을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인가 전 M&A’는 종전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 신주를 발행해 이를 새로운 인수자가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MBK가 보유한 보통주를 무상 소각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2015년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할 때 프로젝트 펀드를 통해 상환전환우선주(RCPS) 5826억원, 블라인드 펀드를 통해 보통주 295억원 등 모두 6121억원을 투자했다. 지난해 말 기준 홈플러스 RCPS 공정가치(시장가격)는 9000억원이지만, 이 중 회수한 건 원금 942억원과 이익금 2189억원 등 3131억원 정도다.

보통주와 달리 별도 프로젝트 펀드로 투자한 RCPS의 경우 인가 전 M&A 과정에서 투자금 회수액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게 국민연금측 설명이다.

국민연금은 의원실에 보낸 답변에서 “인가 전 M&A 특성상 인수인과 관리인 간 협상을 통해 기존에 발행된 증권의 일부 소각이나 감자, 병합, 이자율 조정 등 조건이 변경될 수 있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권리보호를 주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의원은 “국민연금이 홈플러스에 투자한 295억원이 통째로 증발하게 됐다”며 “노동자와 소상공인의 피땀이 배인 돈을 국민연금이 사모펀드에 허투루 투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연금이 함부로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메리츠도 M&A 동의 가닥 = 이런 가운데 MBK의 보통주 무상 소각 계획으로 홈플러스 매각에 속도가 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보통주 소각은 매각가를 낮추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홈플러스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지주가 사실상 M&A에 동의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면서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린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증권·캐피탈 등 3사는 최근 회의를 열고 홈플러스의 회생 인가 전 M&A 건에 대해 큰 틀에서 협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메리츠는 이런 내용을 담아 19일까지 서울회생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메리츠는 지난해 홈플러스에 1조2000억원 규모의 대출을 해주면서 자가 점포 63곳을 담보로 잡았다. 현재 우리은행 신탁을 통해 해당 부동산을 확보하고 있어 담보권을 행사한 뒤 대출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리츠측은 홈플러스가 파산할 시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회사를 일단 살려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알려졌다.

삼일회계법인은 앞서 지난 12일 조사보고서를 통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3조6816억원으로 계속기업가치 약 2조5059억원 대비 높다고 평가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클 경우 원칙적으로 회생절차를 폐지하고 청산해야 한다.

메리츠측이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하고 있어 법원에 청산을 주장할 수 있으나 이런 의견을 일단 배제하면서 홈플러스의 M&A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월 광화문 MBK 앞에서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조합원 등이 홈플러스 정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계획된 철수” 반발 목소리 = 하지만 홈플러스 노동조합 등에서는 M&A 추진을 두고 ‘계획된 철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해결 공동대책위원회는 19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만 시민이 함께한 서명과 홈플러스 구성원들의 절박함이 담긴 수백장의 엽서를 대통령실에 직접 전달했다.

이날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홈플러스 기업회생 절차가 100일을 훌쩍 넘기고 있다”면서 “대주주인 MBK는 홈플러스를 회생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만 어떠한 자구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원에 제출된 조사보고서에는 외부 투자 유치 또는 M&A가 필요하다고 나왔지만 MBK는 아무런 자구노력도 없이 M&A만 추진하고 있다”면서 “M&A가 실패하면 홈플러스는 바로 청산”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직영과 협력업체 노동자, 입점업주 등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까지 수십만 국민의 생존이 직결된 중대한 사회적 사안”이라며 “정부가 즉각 나서지 않으면 홈플러스는 무너지고, 수십만 명의 삶도 함께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수용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장은 “노조와 사측이 모여 홈플러스 사태 해결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서서 견인차 역할을 해야 힘을 발휘하고 견제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풍·한남진·박준규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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