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위원회 풍경
노동위 심문회의, 원격영상회의로 생생하게 하다
심문회의를 이틀 앞둔 사용자의 대리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용자가 심문회의에 중국 본사의 사내변호사를 참석시키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회사 한국지사에 근무하던 근로자는 성과개선프로그램(PIP) 대상자로 선정된 후 2회 연속 PIP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자신에 대한 PIP 시행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다.
중국본사에서는 PIP 시행 실태를 파악하고 근로자와 직접 합의점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의사결정권이 있는 본사 담당자가 심문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화해 추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었다.
문제는 중국에서 오는 변호사가 회의 당일 오후 1시쯤에나 인천공항에 도착한다며 회의순서를 뒤로 미뤄달라는 것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중앙노동위원회가 있는 세종시까지는 3시간 남짓 걸리니 오후 2시 30분에 열리는 회의에 맞춰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더구나 회의순서 변경은 같은 날 열리는 다른 3건의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다른 방법이 없는지 곰곰이 생각하던 중 대리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서울에서 열리는 원격영상회의를 신청해도 될까요?”
중노위 원격영상회의는 당사자들이 세종에 있는 심판정까지 오는 대신 초심판정을 받은 지방노동위원회의 중계시설에 출석해 영상으로 심문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근로자측 대리인에게 사측이 원격영상회의로 참석한다고 하니 본인들도 영상회의를 희망했다. 양 당사자는 서울역에 위치한 영상회의장에 참석하기로 했다. 드디어 심문회의 당일. 원격영상회의는 처음이라 다소 긴장됐다.
현장감 만렙의 중노위 원격영상회의
중노위는 지난해 7월부터 원격영상회의 서비스를 시행했다. 중노위 영상회의시설은 법원의 최신 영상전용법정을 노동위 실정에 맞게 보다 폭넓은 활용성과 확장성을 고려해 도입했다. 특히 법원에 비해 심문회의 시간이 길고 1회 심문회의로 사건이 종결된다는 점을 고려해 중계시스템의 안정성은 물론, 당사자와 위원 등 영상회의 참여자들이 대면으로 참석하는 회의와의 차이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회의환경을 구현했다.
원격영상회의 심판정에는 65인치 대형 화면이 위원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3대, 근로자와 사용자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3대 등 총 6대가 설치돼 회의 참가자들이 발언을 하거나 하지 않는 때에도 서로의 반응과 태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영상회의장에도 담당자가 있어 돌발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양쪽 현장에서 같이 대응할 수 있다.
심판정의 대형 화면에 각각 서울 영상회의장에 있는 당사자들과 세종시 심판정에 있는 위원들이 비춰진다. 화질은 선명했고 마이크를 통해 전달되는 음성은 또렷했다.
위원들과 당사자들은 영상회의시스템에 잘 적응했다. 평소처럼 주심위원부터 심문을 시작했다. 마이크가 켜져있는 위원의 얼굴은 클로즈업돼 집중도를 높였다. 근로자는 카메라나 모니터를 의식하지 않고 적극적인 태도로 또박또박 발언했다. 사용자측 중국인 변호사도 통역자를 통해 심문회의 내용을 유심히 듣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비쳤다. 대면회의와 흡사하게 심판정의 현장감과 당사자들의 표정과 태도가 생생히 전달됐다.
회의가 종결되고 양 당사자들은 화해 논의를 위해 자리를 이동했다. 중국 본사의 변호사는 이날 업무를 마치고 곧바로 중국으로 출국했다. 이렇게 원격영상회의는 무사히 끝났다.
원격영상회의 활성화는 시대적 과제
사건 당사자들이 심문회의 현장에 직접 참석해 대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디지털 소통이 점점 익숙해지고 있는 시대에 부응해 당사자들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는 원격영상회의 활성화는 시대적 과제다.
또한 2020년 코로나19 때 심판이 중단된 적이 있다. 팬데믹 재유행 가능성 등을 고려한다면 물리적인 이동과 대면회의가 불가능한 위기상황에 대비해 안정적인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영상회의시설은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현재 원격영상회의시설은 중노위와 3개 지노위에만 설치돼 있다. 좀 더 많은 예산과 인력이 지원돼 원격영상회의를 원하는 모든 근로자와 사용자들이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문득 얼마 전 강원 속초에 사는 근로자가 출산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 장거리 이동이 어렵다며 회의 참석을 포기했던 일, 제주에서 사업하는 사용자가 비행기 시간을 놓치면 안된다며 심판정에 가방을 둔 채로 바쁘게 뛰어가던 모습이 떠오른다. 강원 제주에 사는 당사자들도 원격으로 심문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