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달러 독점시대 끝나간다

2025-06-20 13:00:17 게재

중국인민은행 총재, 다극통화 체제 주장 … ECB 총재도 같은 목소리

미국 콜로라도 웨스트민스터 은행에 놓인 100달러권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글로벌 외환 질서가 단일 통화 중심에서 벗어나 다극화로 나아갈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에 이어 중국 인민은행 총재도 미국 달러의 패권에 의문을 제기하며, 유로화와 위안화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국제통화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중국 인민은행 판궁성 총재는 18일(현지시간) 상하이에서 열린 중국의 대표적 금융포럼에서 “달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배적인 통화로 자리잡아 현재까지 그 지위를 유지해왔다”고 설명하면서도, “단일 통화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판 총재는 이어 “앞으로 글로벌 통화 체제는 몇몇 주권통화들이 공존하고, 서로 경쟁하며 견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말하며 위안화의 역할 확대를 예고했다.

그는 유로화 도입과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위안화 부상 등을 언급하며, 최근 20년간의 주요 변화를 짚었다. 특히 위안화는 현재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무역금융 통화이자 세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결제통화라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17일 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가 “달러의 지배적 지위는 더 이상 확실하지 않다”고 밝히며 유로화가 글로벌 주요 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은 것이다. 판 총재는 지난주 라가르드 총재와 베이징에서 만나 중앙은행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정례 대화를 위한 틀을 마련한 바 있다.

중국은 이번 발언과 동시에 위안화 국제화 관련 여러 조치를 발표하며 행동에 나섰다. 상하이에는 디지털 위안화 국제 운영센터가 새로 출범했고, 싱가포르 OCBC은행과 키르기스스탄의 엘딕은행 등 6개 해외 금융기관이 중국의 자체 국제결제망인 CIPS에 합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주도의 스위프트(SWIFT) 시스템에 대한 대안 구축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또한 홍콩과 상하이 당국은 위안화 자산의 공동 관리와 할당 등을 담은 금융 협력 ‘행동계획’에 서명했으며, 주허신 외환국장 겸 인민은행 부총재는 중국 본토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을 직접 매입할 수 있는 적격국내기관투자자(Qualified Domestic Institutional Investor) 제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판 총재는 “지정학적 갈등, 국가안보 문제, 전쟁 등 상황에서 국제 지배통화는 쉽게 무기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달러 중심 시스템의 한계를 강조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관리하는 통화바스켓인 특별인출권(SDR)의 활용 확대 역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라가르드 총재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을 통해 지금이 유럽이 유로화를 세계적 통화로 도약시킬 수 있는 “글로벌 유로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면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한다”며 유럽이 지정학적 신뢰성, 경제 회복력, 제도적 통합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EU는 세계 최대 무역권이며, 72개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서 전세계 GDP의 40%에 해당하는 규모를 담당하고 있다”며 유로화의 결제 통화 비중이 약 40%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분절성과 성장률 정체, 고신용 안전자산의 부족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그는 “공공재에 대한 공동 금융, 규제 부담 완화, 단일시장 완성과 자본시장 통합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유로화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며, “글로벌 통화 질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이 기회를 잡아 유럽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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