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중국, 뒤쫓는 한국…한·중 북극항로 경쟁 본격화
국정기획위, 해수부 업무보고 받아
전체 국정과제 속 우선순위·균형 관심
한국과 중국이 북극항로 진출 거점을 놓고 본격 경쟁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위원장 이한주) 경제2분과(분과장 이춘석)는 20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에서 해양수산부의 업무보고를 받고 ‘북극항로 진출 거점 육성’ 등 해양수산 관련 공약에 대한 이행계획을 점검한다.
국정기획위는 앞서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은 후 각 부처 업무보고 내용에 대해 “매우 실망”이라며 공약에 대한 분석이나 반영 없이 구태의연한 과제를 나열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수부 부산 이전을 놓고 해수부 직원들이 동요하고 있는 가운데 국정기획위와 해수부가 북극항로 진출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목적에 맞춘 이행방안을 어떻게 내놓을지 주목된다.
◆중국, 러시아 로사톰 손잡고 북극항로 활성화 추진 = 중국은 북극 연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북극 인근 국가’(Near Arctic State)라는 개념을 만들어 북극 진출에 전략적으로 나서고 있다. 중국 해운기업들도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 전략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중국선사들은 북극항로를 통한 운송화물도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넘어 일반 상품까지 확대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바렌츠옵서버’는 18일(현지시간) 러시아 로사톰이 핵추진 쇄빙선을 추가 배치해 북극항로를 통한 중국-유럽 간 상업용 컨테이너 운송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로사톰은 지난해 중국 해운기업 뉴뉴쉬핑(New New Shipping)과 함께 북극항로(NSR) 물류 활성화를 모색하기 위한 합작법인을 설립한 바 있다. 합작법인은 중국에 등록돼 있고, 중국 법률을 적용받는다.
로사톰과 뉴뉴쉬핑은 18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의 북극 해운 관련 세션에서 다시 만나 북극항로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로사톰은 국제경제포럼의 주요 후원사 중 하나다.
포럼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포럼에는 푸틴의 측근으로 북극항로국 부국장을 맡고 있는 뱌체슬라프 룩샤도 등장했다. 그는 무르만스크의 핵쇄빙선 함대 책임자도 역임했다.
로사톰과 중국의 사업은 구체화되고 있다. 러시아 북극개발국가위원회 부위원장인 블라디미르 파노프는 로사톰의 북극사업 총괄 대표로서 중국과의 협력 사업 실행을 주도하고 있다.
파노프는 포럼에서 “우리는 현재 4400 TEU 규모의 ‘Arc7급’ 빙해 운항 컨테이너선 설계와 건조 계약을 논의 중”이라며 “건조 비용은 계약을 수주하는 조선소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1단계로 최대 5척을 건조할 예정이며, 첫 선박은 2027년 항해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바렌츠옵서버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는 타이미르 반도 동부 겨울철 해역을 쇄빙할 수 있는 핵추진 쇄빙선 4척을 운영 중이며 3척을 추가 건조 중이다. 이와 별개로 극한의 북극 해빙을 위한 초대형 쇄빙선 1척도 개발하고 있다.
뉴뉴쉬핑은 러시아의 북극항구 아르한겔스크 개발에도 참여하고 있다. 러시아는 아르한겔스크를 컨테이너 화물의 핵심허브로 키우고 있다.
미국의 해운조선 전문미디어 지캡틴(3월 3일)에 따르면 지난해 아르한겔스크 터미널에서 중국 컨테이너 선박이 10회에 걸쳐 수출입 항해를 했다. 2023년에는 한 차례 진행했다.
아르한겔스크항에서 처리한 물동량도 6m 길이 컨테이너 1만3500개(1만3500TEU)로 2023년 380TEU보다 35배 증가했다.
◆북극용 쇄빙연구선도 못 만든 한국, 북극항로 대응책은 = 기후와 지정학의 변화로 북극시대가 빠르게 열리고 있지만 정부는 2026년까지 완공하겠다던 북극용 쇄빙연구선도 제작하지 못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2021년 북극 전용 차세대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겠다며 예비타당성 조사를 진행하고 2023년 기본설계도 완성했지만 쇄빙연구선을 건조할 조선소를 찾는 단계에서 계획을 멈췄다. 정부가 책정한 예산으로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겠다고 나서는 조선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해수부는 예산당국과 협의해 내년 예산에는 반영되도록 해 2029년까지는 건조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기간 북극항로 진출 거점을 육성하겠다고 공약했다. 또 이를 위해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와 유튜브 대담에서 북극항로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와 외교가 특히 중요하다고 밝혔다. 김 명예교수는 한국과 미국 러시아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합종책과 중국 일본과도 동반성장할 수 있는 연횡책이 상호 보완할 수 있는 견제와 균형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수부가 북극항로 거점 육성 방안을 혼자 마련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와 관련 박인호 신해양강국 국민운동 상임대표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해양위원회를 조직·운영할 것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19일 “기후변화와 지정학 변화에 대응해 해양에서 진짜 성장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해양위원회가 필요하다”며 “북극항로 준비도 국가해양위원회가 해양과 연관된 외교 안보 공급망 영토 산업단지재개발 도시계획 등을 논의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며 해수부를 지원해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극항로 거점 육성에 대한 민주당의 대통령선거 정책공약에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과 함께 ‘국가 차원의 북극항로 컨트롤 타워’와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포함됐다.
또 △부·울·경 및 동남해안 북극항로 거점 배후단지 조성을 위한 항만재개발 및 관련 연구기관 등 조성 △조선해양산업 및 선박관리 등 항만연관산업 특화 지원 △북극항로 안전 운항을 위한 기술 및 항만 인프라 개발 등도 담았다.
북극항로 진출 거점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에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최윤희 해양산업총연합회장은 “중국이 남중국해를 자기들 앞바다로 만들기 위해 인공섬 7개를 만들었고, 이런 방식으로 서해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했다”며 “전통적인 해상공급망인 수에즈운하와 호르무즈해협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대만해협 말라카해협도 안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러시아와 손잡고 북극항로 시대를 준비한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이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해운강국 실현과 HMM 부산 이전 = 이 대통령은 북극항로 준비를 위한 해수부 부산 이전과 함께 국내 최대 선사 HMM의 부산 이전도 공약했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HMM 지분 71%를 갖고 있다는 게 근거가 됐다. 국민연금공단 지분까지 합치면 정부 영향력 있는 지분은 76%에 이른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에 직접 “HMM을 부산으로 옮겨오겠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해양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부산을 해운산업의 성장 거점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게 이유다.
이 대통령은 “HMM의 부산 이전은 단순한 지역 이동이 아니다”며 “부산항이라는 국제 해운 허브와 가까워지면서 현장 중심 경영을 실현하고 기업 경쟁력 향상을 가져올 실질적인 변화”라고 주장했다. 해양정책을 총괄하는 해수부가 부산에 자리하면 정책집행이 더 효율적이고, 집적된 해양산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산은과 해진공이 갖고 있는 지분을 민영화하겠다는 방침과 어떻게 조화시킬지는 과제다.
해수부와 해진공은 HMM을 민영화해 글로벌 해운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방향을 강조해 왔다. 사실상 공기업 체제를 벗어나 민영화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선복량 기준 세계 10위권 안의 선사들은 치열한 시장점유율 경쟁을 전개하고 있다. 세계 8위인 HMM은 7위인 대만 에버그린에 비해 선복량이 절반 수준이지만 주인이 없는 지배구조 문제로 투자 결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공약집에 글로벌 친환경 정책 추진으로 해운강국을 실현하겠다는 것도 포함했다.
해운강국을 만들기 위해 △국제해사기구(IMO) 친환경규제에 대응해 친환경 선박건조를 위한 국적선사 선박금융 확대 △친환경 연료공급망 확대 △국내외 녹색해운항로 신설 및 확대 △우수 선·화주 인증제도를 내항해운업계에 확대 추진 등을 약속했다.
광역공약에도 북극항로 준비는 포함됐다.
이 대통령은 해수부를 부산으로 이전해 부산을 해양강국의 중심도시로 만들고, 부산을 북극항로를 선도하는 육해공 트라이포트로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울산항도 북극항로시대를 대비해 오일 가스 등 고부가 에너지 물류 신북방 전진 기지로 만들겠다고 했다. 북극항로를 준비하는 해수부가 광역지자체와 실질적 협의구조를 어떻게 마련할 지 주목된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