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식은 자리에 온기가 퍼졌다
서울시 자원봉사단, 산불 피해지역 봉사
생필품 지원부터 재난후유 심리치료까지
“안동 크기가 서울의 2.5배인데 이번 산불로 서울 면적 만큼이 타버렸습니다.”
경북 안동시 길안면 대곡1리 마을 총무를 맡고 있는 황창희(58)씨는 2년전 귀농했다. 지난 산불로 집과 창고, 차량과 농기계, 사과나무 600주가 모두 탔다. 평생 살아온 집이 산불에 휩싸인 광경을 지켜봐야 했던 김갑선 할머니는 “내 집도 다 탔지만 저 사람은 우리보다 더 큰 화를 입었다”고 안타까워 했다.

◆꽃 심고 평상 놓고 마음 보듬고 = 지난 13일 서울시 봉사단이 안동 산불 피해지역인 길안면 대곡리를 찾았다. 모두 113명이다. 마을주민이 44명이니 약 3배의 인원이 봉사를 온 셈이다.
봉사단은 임시주거시설 곳곳에 꽃과 나무를 심고 주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평상을 만들었다. 미용과 한방 진료도 했다.
봉사단의 안동 방문은 이번이 3번째다. 앞선 1·2차 봉사에서 긴급지원과 일상회복에 초점을 뒀다면 3차에는 심리 치유와 정서 회복을 중심에 뒀다. 봉사단에 한의사와 미용사, 원예봉사자도 포함된 이유다.
잠시 웃음을 지었지만 어르신들 일상회복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서복례 할머니(89)는 “산불 이후엔 누가 내 이름만 크게 불러도 가슴이 철렁한다”며 “작은 불씨만 봐도 무섭다”고 트라우마를 호소했다.
송창훈 서울시자원봉사센터장은 “3회에 걸쳐 계획하니 회차별로 중점 활동을 달리해 체계적인 봉사가 가능했다”며 “물품 지원에만 국한된 일회성 활동을 넘어 재난으로 상처받은 주민들 마음을 보듬는 활동을 중점적으로 실시했다”고 말했다.
◆공공·기업·개인 하나된 대규모 봉사단 = 봉사단은 서울시와 ‘용산 드래곤즈’, 신한은행그룹 등 27개 기업과 기관이 함께 꾸렸다. 용산드래곤즈는 용산지역 19개 기업·기관이 힘을 합쳐 만든 자발적 연합 봉사단체다. 개별기업 차원에서 모으기 힘든 봉사자를 여러 기관이 연대해 구성하니 규모가 커졌고 실효성 있는 봉사활동이 가능해졌다.
봉사활동이 성사되기까지는 숨은 공로자도 여럿 있다. 김의승 전 서울시 부시장도 그 중 하나다. 재작년 퇴직 후 고향에 내려와 지내고 있는 김 전 부시장은 산불 발생 이후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봉사활동을 연결하고 지역 특산물 장터를 주선하는 등 피해복구와 주민지원에 앞장섰다.
개인 참여자도 여럿 눈에 띄었다. 임윤택 서울 북부지방법원 경위는 “평소 직원들에게 봉사활동을 권장하는 법원장의 배려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며 “국민들이 한마음으로 걱정했던 안동산불 피해복구 현장에 오니 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번째 봉사, 더 깊어진 위로 = 안동산불 봉사활동은 외국인과 내국인 공공과 기업이 함께 대규모 봉사단을 꾸렸다는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1차 에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71명, 시 공무원 48명 등 156명이 참여했고 2차에는 일반봉사자와 기술인력 등 76명이 참여했다. 자원봉사센터가 전체 일정과 활동을 계획했고 피해지역에 심을 나무와 꽃, 후원물품 등을 모집했다.
오후 5시 활동을 마무리하고 서울행 버스에 오를 무렵 봉사자 손을 꼭잡은 한 주민은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거 보이 내도 이짜기(이제) 기운 좀 내야 되겠니더”라며 활짝 웃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