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로보택시 주도권 놓고 치열한 경쟁
누적운행 경험 쌓은 바이두·웨이모 등 해외시장 진출 박차 … 테슬라 참전도 관심
지난달 중국 우한에서 바이두가 개발한 자율주행 호출 서비스 ‘아폴로 고(Apollo Go)’ 택시를 탄 일레인 장(Elaine Zhang)은 기술 수준에 놀랐다. 2021년 베이징에서 처음 경험했을 당시보다 훨씬 똑똑해졌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러시아워에도 차량 안에 비상대기 중인 운전사가 없었다.
닛케이아시아 최신호에 따르면 30대 IT업계 종사자인 장씨는 “차량이 우측으로 추월하려는 차에 클랙슨을 울리고, 다른 차량이 차선을 바꾸려 하자 속도를 내는 것에 놀랐다”며 “뒷좌석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해 재생할 수 있었던 점도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은 분명히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인간 운전자만큼의 지능은 아닌 것 같다”며 “급할 땐 안 탈 계획이다. 3.5㎞를 가는 데 20분이나 걸렸다. 보행자 주변에서는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전체적으로 딱딱하게 운전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장씨의 경험은 중국 자율주행 기술이 수년 만에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며 “하지만 잠재적으로 수익성이 매우 큰 자율주행산업의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지는 아직 미정이다. 주요 경쟁국인 미국 역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미국, 로보택시 상용화에 속도
중국에선 바이두(Baidu)와 포니.ai(Pony.ai), 위라이드(WeRide) 등이 베이징 광저우 등 1선도시에서 운영 허가를 받았다. 미국에선 웨이모(Waymo)가 샌프란시스코 등지에서 유료 로보택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테슬라(Tesla) 역시 22일(현지시각) 텍사스 오스틴에서 로보택시를 처음 선보였다. 예상보다 늦었고 초기 약속보다 대거 줄어든 규모지만 업계와 테슬라 모두에게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테슬라는 지난해 10월 ‘사이버캡(Cybercab)’이라는 2도어, 실버 컬러의 로보택시 시제품을 공개하며 “핸들과 페달이 없는 완전 자율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에 오스틴에서 출시되는 차량은 사이버캡이 아닌, 기존 모델 ‘Y(Model Y)’ 차량이다.
중국 로보택시 업체의 한 관계자는 “모델 Y를 사용하는 건 테슬라가 상용화를 위한 데이터 수집에 절박하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사이버캡이 2027년 이전 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바이두의 아폴로 고는 현재 약 1000대의 차량을 운행 중이다. 올해 1분기에만 140만회의 탑승서비스를 제공했다. 포니.ai는 300대 이상을 보유 중이며 올해 말까지 1000대, 2026년까지 2000~3000대 확대를 목표로 잡았다. 위라이드는 약 400대를 보유하고 있다.
누적 운행 수에서 앞선 중국
골드만삭스는 2030년까지 중국 10곳 이상 도시에서 50만대의 로보택시가 운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또 2035년에는 중국 로보택시 시장의 매출 규모가 47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예상치 5400만달러에 비하면 급등 수준이다. 하드웨어·알고리즘 가격 하락, 운영비 절감에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다.
한편 웨이모는 지난해부터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일부 도시에서 유료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작했다. 올해 4월 기준 주간 25만회 이상의 자율 요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1500대 이상의 상용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2026년까지 3500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이핏데이터(YipitData)에 따르면 웨이모는 샌프란시스코 전체 차량 호출 서비스의 25%를 점유하며 리프트(Lyft)를 제치고 2위 자리에 올랐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웨이모의 상용화 성공은 로보택시업계의 ‘챗GPT 순간’이라 불린다. 수년간 투자가 실현가능성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입증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로보택시 운행지역이 도심 외곽으로 제한돼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우한 등에서 운행되지만 대부분 도심 중심부는 불허된다.
한 중국 로보택시 고위관계자는 “로보택시 업체들은 운행지역을 넓히고자 하지만 규제당국이 실업가능성에 민감하다”고 전했다. 그는 “택시기사들이 자율주행 플랫폼으로 이미 타격을 받고 있고 현재는 그 플랫폼 기사들조차 생계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사회적 안정이 핵심이기 때문에 규제당국은 운행지역 확장 허가에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일본·중동·유럽 등 해외 진출 경쟁
중국과 미국 양측 모두 해외 진출을 적극 추진 중이다. 웨이모는 올해 4월부터 일본 도쿄에서 로보택시를 시범운영 중이다. 현지 플랫폼 ‘고(GO)’, 일본 최대 택시회사 ‘니혼코츠(Nihon Kotsu)’와 협업해 데이터 수집·훈련 뒤 유료서비스를 할 계획이다.
바이두와 포니.ai, 위라이드는 중동 진출을 선언했다. 바이두는 올해 안에 두바이에 100대, 향후 3년 내 1000대 이상 로보택시를 배치할 계획이며, 아부다비에선 현지업체 ‘오토고(Autogo)’와 협력 중이다. 포니.ai와 위라이드는 우버(Uber)와 협력해 유럽과 중동에 로보택시 배치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중국과 미국 경쟁업체들에 아직 뒤처져 있는 테슬라는 전기차 기반 생산력 덕분에 단가를 낮출 수 있는 강점이 있다. 이는 로보택시 사업 확대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웨드부시증권(Wedbush)의 댄 아이브스도 “AI 기반 훈련 덕에 테슬라의 자율주행 사업은 기존 자동차 사업과 시너지를 낼 것”이라 평가했다.
그는 “웨이모와 우버도 수혜를 보겠지만, 진정한 승자는 테슬라일 것”이라며 “AI 와 자율주행 시장에서 테슬라 독자적으로 누릴 가치는 1조달러 이상”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테슬라의 자율주행 서비스에 신속한 인허가를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테슬라, 전기차 제조역량 발휘할까
머스크는 중국 전기차 산업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한 중국 관영매체는 “중국정부가 테슬라의 로보택시 시험운행을 환영한다”고 보도했다.
한 중국 업체 관계자는 “이 시장은 아직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시장점유율이 0.1%도 안 되는 상태”라며 “테슬라가 진입해 정책 개선과 대중 인식 향상에 기여한다면 전체 산업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기차 제조역량이 반드시 로보택시 사업의 성공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니.ai CEO 쥔 펑(Jun Peng)은 “차량 생산비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운영과 유지보수, 고객서비스 능력 등 노하우가 성공의 핵심”이라며 “특히 우리는 공급망 우위 덕에 테슬라나 웨이모 대비 훨씬 낮은 비용으로 로보택시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글로벌리서치 이사인 리밍은 “중국은 배터리와 라이다(LiDAR) 등 구성요소에서 탄탄한 공급망을 구축한 반면, 미국은 고성능칩 등 첨단 하드웨어와 자본력에서 우위를 갖는다”고 분석했다.
기술 외 정치요소도 큰 변수
기술 외에도 ‘정치’가 변수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중국산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금지조치를 발표했다. 2026년 본격 시행된다. 반대로 중국 데이터 수출규제는 테슬라 등 외국기업의 중국시장 진입을 가로막아 왔다. 하지만 최근 중국은 자동차 데이터 수출에 관한 가이드라인 초안을 발표하며 일정부분 완화 조짐도 보였다.
단기적으로는 유럽과 중동이 미중 양국 기업들의 격전지가 될 전망이다. BofA의 리밍 이사는 “중국 로보택시는 저비용과 복잡한 도로환경에 대한 알고리즘 우위를 가졌다. 그래서 해외시장 진입이 빠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내부에 위기의식도 크다는 분석이다. 한 중국업체 고위관계자는 “업계 리더들은 정부에 ‘미국의 발전속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며 “비도심 외곽지역에서 소규모 시험에만 국한된다면 중국이 미국에 뒤처질 위험이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