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반도체 웨이퍼 작업 사망 ‘산재’
법원 “유해요소에 복합적 노출 후 발병”
11년간 반도체 웨이퍼 공장에서 일하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에 걸려 사망한 근로자 유족에게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역학조사에서 의학적 발병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더라도 작업 환경상 다양한 유해유소에 복합적으로 노출돼 병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합의3부(최수진 부장판사)는 A씨의 유족이 신청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A씨는 2004년 12월부터 2016년 4월까지 한 중소기업 반도체 공장에서 웨이퍼 연마 및 세정업무를 담당했는데, 2017년 3월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을 진단받아 치료받았지만 이듬해 12월 사망했다. A씨의 직접사인은 폐렴이었지만, 선행사인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었다.
유족은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지만, 공단은 “유해물질의 양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고, 의학적 근거가 명확히 밝혀진 바 없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그러면서 “A씨가 작업 중 불산·염산·질산·극저주파 전자기장·디클로로메탄 등 유해물질에 노출됐다고 추정하더라도 작업환경측정 결과나 역학조사 회신서를 참고할 때 유해물질 양이나 노출 빈도가 높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유족은 공단의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재판에서 “11년 넘게 일하면서 유해화학물질에 장기간 노출됐다”며 “작업장에 환기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고 개인보호구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1주 평균 60시간 교대근무하며 비타민D 결핍 등 신체 항상성 유지가 어려운 상태인 점 등을 종합 고려하면 만성적 유해물질 노출이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발병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해당 질병의 발병과 업무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질병의 발병 원인과 메커니즘이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A씨가 해당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디클로로메탄을 포함한 다양한 유해화학물질, 극저주파 전자기장, 주야간 교대근무 등 유해요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이후 질병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특히 유해인자 노출기준은 유해인자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경우를 전제로 한 것”이라며 “복수의 유해인자에 동시에 노출되거나, 작업환경의 유해요소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 유해요소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질병 발생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A씨가 일반 덴탈마스크와 라텍스장갑 외에는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신체를 적절히 보호할 수 있는 보호구를 지급받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