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보험사 숙원사업’ 입법예고 강행…“치료받을 권리 훼손, 건강보험 악화”

2025-06-23 11:04:09 게재

자보환자 8주 이상 진료 받으려면 환자가 상해 정도·치료자료 직접 제출 … 치료 연장 여부는 보험사가 자체 결정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고 있는 새정부의 장차관이 임명되기도 전에 국토교통부가 보험사 숙원 사업을 수용하는 입법예고를 강행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입법예고대로 하면 자동차보험환자가 8주 이상 진료를 받으려면 환자가 직접 상해 정도와 치료경과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치료 연장 여부는 보험사가 자체 결정하게 된다.

23일 대한한의사협회는 국토교통부가 입법예고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했다.

국토교통부는 상해등급 12~14급에 해당하는 경상 교통사고 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을 경우, 치료 개시 후 7주 이내에 상해의 정도 및 치료 경과에 관한 자료를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의무화하는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한의협은 “겉보기에는 합리화 조치로 포장되었으나, 실상은 보험사의 비용 절감을 최우선으로 한 졸속 행정이며 국민의 치료받을 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반의료적 정책 개악”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시작돼 아직 신임 장·차관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7월 중 이해당사자인 한의계와 협의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습적으로 입법예고를 강행한 것이서 비판이 쏟아진다.

한의협은 “상식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행정조치”이며 “누구를 위한 졸속 기습 입법예고인지 그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환자는 치료 연장을 위해 일방적으로 정해진 기한 내에 자료를 준비해 보험사에 직접 제출해야 한다. 보험사는 해당 자료를 자의적으로 평가하고 진료비 지급 여부를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셀프 심사’ 체계를 갖추게 된다.

이는 ‘자동차보험 진료수가에 관한 기준’에 따라, 의료기관과 전문심사기관(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역할을 분담하여 관리해오던 의료적 판단 체계가 파괴되고,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치료 지속 여부를 결정짓는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의제기 절차 또한 매우 부실한 것으로 지적된다. 환자가 불복할 경우 보험사가 스스로 민원을 조정기구에 회부하고, 7일 내에 판단을 받는 방식이다. 피해자(환자)가 행정적, 시간적, 정신적 부담을 오롯이 떠안게 되는 행태다.

결국 해당 입법예고가 통과될 경우 보험사는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환자는 치료를 포기하거나 자동차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을 통해 치료받도록 유도되는 현실이 초래된다.

한의협은 “이러한 제도 개악은 자동차보험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고, 공공보험인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을 떠넘기는 전형적인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의협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공론화 과정없이 입법을 강행하는 행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한의협은 △국토교통부는 새정부 신임 장 · 차관이 부재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진행한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즉각 철회할 것 △정부는 피해자 중심의 의료 접근성과 국민 건강권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는 공정하고 독립적인 진료심사 체계를 유지할 것 △국토교통부는 의료단체, 시민사회, 환자단체와의 공개적 협의를 통해 사회적 합의 기반의 제도 개편 절차를 다시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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