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속속 철수하는 중국기업들

2025-06-24 13:00:03 게재

알리바바 정도만 남고 대부분 자취 감춰 … 미·중 자본시장 '결별 수순'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증권거래소(NYSE) 본 거래장. 23일(현지시간) 장 초반 트레이딩이 진행 중이며, 전광판과 트레이딩 부스가 거래소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증시에서 중국 기업들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22일자(현시시간) 월스트리트저널에 의하면 한때 ‘월가의 총아’로 불리며 미국 자본을 끌어모았던 중국 기업들이 워싱턴과 베이징 간의 정치·경제적 불신 속에 하나둘 철수하고 있다. 한때 공생관계로 여겨졌던 미·중 자본시장이 급속히 해체되는 양상이다.

시장조사기관 윈드에 따르면 2019년 이후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나스닥에서 상장폐지된 중국 기업은 80곳이 넘는다. 현재 상장된 중국 본토 기업 275곳은 전체 시가총액의 2%에도 미치지 못한다. ‘빅딜’로 불릴 만한 대형 IPO는 자취를 감췄고, 최근에는 공모액 수백만달러 수준의 투기성 종목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일부는 주주 수 300명도 유지하지 못해 상장 자격 논란에 휘말리기도 한다.

2014년 250억달러 규모로 미국 역사상 최대 IPO를 단행했던 알리바바는 지금도 미국 내 중국 주식 전체 시총의 30%를 차지하고 있지만, 오히려 예외적인 사례로만 남아있다. 한때 NYSE 외벽을 중국 국기로 뒤덮을 만큼 환영받았던 중국 기업들이 이제는 철수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미국에 상장된 중국 대표 국영기업들은 대부분 시장에서 사라졌다.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 우선 투자 정책’의 일환으로 중국 기업의 자본조달 활동에 제동을 걸고 있다. 공화당 중진 의원들은 중국 상장기업이 “공산당과 연계돼 있으며, 강제노동이나 군사 분야에 연결된 경우도 있다”며 증시 퇴출을 요구하고 있고, 미국 23개 주 재무장관들도 공동 서한을 보내 중국 기업 축출을 촉구했다.

이같은 압박 속에 중국 기업들은 ‘출구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알리바바는 이미 3년 전 홍콩에 1차 상장을 추가했고, 2021년 NYSE에 상장됐던 디디글로벌은 중국 정부의 조사 직후 자진 상장폐지를 결정했다. 쉬인(Shein) 역시 미국 상장을 추진하다 정치적 반발로 무산됐다.

오랫동안 미·중 당국의 묵시적 승인 아래 사용돼온 ‘가변이익실체(VIE)’ 구조도 비판의 중심에 섰다. VIE 구조는 외국인 직접투자가 금지된 중국 내 인터넷 등 민감산업 기업들(알리바바, 바이두)이 미국에 우회 상장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나 실질적 지분이 아닌 수익계약만 보장해 투자자 보호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미 의회는 최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VIE의 제재를 요구했다.

시장에서는 중국 기업의 전면 퇴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뉴욕의 한 글로벌 투자은행 주식본부장은 “과거에도 유사한 경고는 많았지만 실제 실행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라, 고객사들에 자산 보호 방안을 사전에 점검하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홍콩은 새로운 대체지로 부상 중이다. 지난 5월 중국 배터리업체 CATL은 홍콩증권거래소에서 46억달러 규모의 IPO를 성공시켰다. 미국 자본이 중국 기업을 배제하려는 와중에 역설적으로 제3국 시장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의 성장 잠재력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UC샌디에이고의 빅터 시 교수는 “BYD 같은 고성장 기업에 미국 투자자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중 관계 악화가 양국 자본시장 구조 자체를 재편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의 ‘월가-중국기업간 밀월관계’ 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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