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부채 위기 심화…구조 개혁 시급
이자부담이 정부예산 10% 보건·교육 예산보다 많아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산으로 시작된 2025년 ‘희년 프로젝트’(Jubilee 2025)가 개발도상국(신흥국) 부채 문제를 넘어 국제 금융 구조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황청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아르헨티나 전 재무장관 마르틴 구스만이 주도한 희년 위원회(Jubilee Commission)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금의 위기는 단순한 채무불이행이 아니라 국가가 국민과 환경, 미래에 대한 의무를 불이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국제사회 공동책임의 위기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특히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의 급격한 축소가 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충격을 집중 조명했다.
선진국들이 자국의 재정 여건을 이유로 성장과 빈곤 퇴치를 위한 원조 예산을 감축하고 있으며, 최근 몇 년간 기후 재정 지원까지 중단되는 등 ‘포괄적 지원 종료’ 조짐이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이어 “개발원조 부족은 단순한 재정 격차가 아니라 교육·보건·기후 대응 역량을 동시에 붕괴시키는 원인”이라며, “이는 글로벌 안정성과 경제성장을 함께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부채 상환 부담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신흥국들은 2010년대 초반까지 세계 자본시장에서 고성장을 이유로 많은 자금을 유입받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선진국 금리가 급등하며 그 자금은 빠르게 이탈했다.
그 결과 외화 채권의 상환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고금리로 인해 재정지출은 더욱 제약되고 있다. 보고서는 “외채 이자의 급증은 필수적인 공공투자와 복지지출을 억제해 경제적 희망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54개국은 세수의 10% 이상을 이자 상환에 사용하고 있으며, 전 세계 33억명은 보건 예산보다 더 많은 금액이 부채 이자에 투입되는 국가에 살고 있다. 보고서는 “이자 지출이 보건·교육·기후 인프라 투자를 갉아먹고 있다”며 채무조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또 다른 구조적 문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위기 시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져나가 선진국으로 몰리는 ‘안전자산 선호(flight to safety)’ 구조를 지적했다.
“글로벌 금융의 비대칭성은 부유국엔 회복을, 빈곤국엔 불황을 남긴다”는 설명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현재 국제금융 시스템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만을 위한 구조”라며, “지금 채무조정을 회피하면 수많은 국가들이 또 다른 ‘잃어버린 10년’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교황직을 이어받은 레오 14세는 지난 5월 취임 미사에서 “우리 시대에는 여전히 많은 불화와 상처가 존재하며, 경제 패러다임은 지구를 착취하고 가장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희년 위원회는 6월 30일부터 7월 3일까지 스페인 세비야에서 개최되는 ‘제4차 개발재원 조달 국제회의’에서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국제 채무 구조 개혁 논의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