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여파 미국내 가전제품 가격 상승 우려
세탁기·냉장고·오븐 등에
최고 50% 철강관세 적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무역 관세 조치가 미국 가정용 소비재 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부터 수입 세탁기, 냉장고, 오븐, 식기세척기, 건조기 등 주요 가전제품에 대해 최대 50%에 이르는 철강 관세가 적용된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5월 철강 및 일부 철강 제품에 대한 관세를 기존 25%에서 50%로 인상한 데 따른 것이다. 상무부는 이 관세가 제품 자체가 아닌 철강 함유 부품에 적용되며, 대상 품목에는 주방용 오븐, 음식물 처리기, 냉동냉장고, 건조기 등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2기 집권 이후 본격화된 산업안보 기반 무역 정책의 일환으로, 반도체, 목재, 의약품, 핵심 광물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자동차와 부품 수입에도 25% 관세가 부과된 바 있으며, 현재 반도체와 장비에 대한 추가 관세도 검토 중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확대가 미국 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이자 전 댈러스 연은 총재인 로버트 카플란은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관세 영향이 없었더라면 연준이 지금쯤 금리 인하에 나섰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고 말했다.
MIT의 경제학자 다니엘 호른웅은 “5월 물가상승률이 예상보다 낮았던 것은 단기적으로 관세 영향을 받지 않는 항목들, 즉 주거비나 항공요금 등이 안정됐기 때문”이라며 “수입업체들이 관세 적용 전 재고를 비축해둔 덕분에 소비자 가격 반영이 일시 지연됐을 뿐, 향후 수개월간 주요 가전제품 가격이 계속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인 2018년 수입 세탁기에 대해 최대 50% 관세가 부과됐을 당시, 미국 소비자들은 세탁기 한 대당 평균 86달러, 즉 약 12%의 가격 인상을 겪은 바 있다. 당시 건조기에는 관세가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유사한 폭의 가격 상승이 있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번 관세는 오는 7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상호 관세’ 발효를 앞두고 시행되는 조치다. 해당 관세는 미국의 거의 모든 교역 상대국을 대상으로 하며, 국가별로 10~50%의 관세율이 책정돼 있다. 지난 4월 발표 후 90일 유예됐던 이 관세가 예정대로 시행되면, 세계 시장의 추가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4월 발표 당시 스마트폰, 노트북, 헤드폰 등 일부 대중 소비 전자제품은 관세 대상에서 제외했지만, 반도체 산업에 대한 국가안보 조사가 진행중이고, 이에 따라 이들 제품 역시 관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