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상기하자 6.25’ 포스터를 떼자

2025-06-25 13:00:02 게재

1950년 6월에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어느덧 75년이 되었다. 이제는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도 드물다. 1950년대에 태어나 국민학교 시절에 6월만 되면 ‘상기하자 6.25’ 표어가 붙은 포스터를 그리고 웅변대회, 글짓기 대회를 하던 세대도 은퇴했다.

필자도 제사나 명절 차례가 있을 때마다 어른들의 화제는 의례 전쟁때 피난가거나 군대에서 겪은 전쟁 얘기로 흘러갔던 기억이 남아있다. 인천에 상륙한 유엔군이 서울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시가전, 혹한 속에 겪은 1.4 후퇴, 휴전 직전의 고지전 얘기는 하도 많이 들어 거의 욀 정도가 되었다.

휴전상태인 한국전쟁은 법적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끝났다. 최근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세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희한한 분쟁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재개발 고층된 아파트에 입주하려던 주민들이 옥상에 대공포 진지가 설치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건설사에 속았다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건설사는 진지 설치가 건축허가 조건이었고 군사기밀이므로 공개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지만 입주민들은 납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입주민들이 부동산 투기에 눈이 멀어 반공정신이 희박해졌다고 야단치는 보수파도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값이 문제가 되니 반공이나 안보는 뒷전인 것이다.

이 사건은 시민들의 기억에서 한국전쟁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위해 개인이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남북간 평화체제 조속히 확립될 필요

쉴 새 없이 안보를 외치던 보수정부가 정작 안보를 위해 진짜 필요한 사회체제에 대한 시민의 동의를 확보하는 일은 등한시했다. 끝난 전쟁을 끝났다고 인정하지 않으니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일이 쌓인다. 남북간의 대화나 교류가 진행되다가도 정치적 돌발 사건이 하나 터지면 순식간에 전운이 감돈다. 여전히 사회 일각에서는 휴전상태를 끝내고 남북이 국가로 상호 인정하면 분단이 영구화된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해야 미래가 보인다.

이미 미국의 트럼프정부는 한미동맹을 대중 포위망의 일부로 활용하려는 속내를 밝히고 있다. 한국은 불안정한 휴전상태를 벗어나야 균형감각을 가지고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북한만 주적이라고 몰아세우다 보니 북한이 아닌 외국으로 군사기밀을 빼돌려도 법적으로는 간첩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 일각에 아직도 남아있는 반공을 빌미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모리배를 없애기 위해서도 남북간의 평화 체제가 조속하게 확립될 필요가 있다.

사실 남북이 국가와 국가의 관계를 수립하더라도 지금보다 안보비용이 더 들어갈 이유가 없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큰일 난다는 사람들도 중국과 티이완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한국도 미국과 일본을 따라 군사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하지 못한다.

물론 핵무장한 북한을 한국 혼자서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도 당연히 나온다. 그러나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기 위해 영원히 휴전상태를 유지해야 할 것인가라는 반문도 제기할 수 있다. 동북아 지역에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해서도 6.25는 공식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평화를 강조하는 진보정부가 들어섰으니 남북관계도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 시민이 많다. 그러나 트럼프와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양자회담을 하고 한국 대통령은 문밖에서 처분을 기다리던 2019년 6월 30일의 광경은 결코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다. 중요 당사자를 배제한 회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일본 이시바 총리도 평양에 대표부를 설치한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므로 북한과 일본 사이에 진행되는 협의를 한국이 모르고 지나가는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인의식 갖고 당당한 남북관계 관리를

냉혹한 현실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자존심을 숙인다고 상대방에게 존중을 받는 것도 아니다. 새 정부가 당당하게 주인의식을 가지고 남북관계를 관리해야 6 .25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한국 내부를 설득하는 난제도 풀릴 수 있다.

어차피 ‘상기하자 6 .25’를 외치던 세대는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남북관계를 스스로 설계하고 실현할 권리가 있다.

이종구 성공회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