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조4천억 할당관세 지원했지만 먹거리물가 못잡았다
과일값 뛰자 수입과일에 할당관세 지원
수입가 1% 내릴때 소비자가격 0.25%↓
설탕 수입물가 1% 내렸지만 빵값은 올라
관세지원보다 유통구조 개선 등 우선해야
농축산물 할당관세 적용은 정부가 먹거리 물가 안정을 위해 사용하는 단골정책카드다. 전반적인 물가 안정세에도 먹거리 물가가 급등했던 지난해에만 1조원이 넘는 재원이 투입됐다.
하지만 국내 유통구조 등의 문제로 소비자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할당관세의 무분별한 확대보다는 유통구조 개선 등 물가 관련 구조개혁에 정책역량을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과일값 급등에 열대과일 풀어 = 25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할당관세 운용 현황과 개선과제’ 보고서를 보면 정부의 지난해 할당관세 지원액은 1조4301억원이었다. 전년(1조753억원)보다 3548억원 증가했다.
할당관세는 특정 수입품에 일정 기간, 일정 수량에 한해 기본세율의 40%p 범위에서 관세율을 조정하는 제도다. 국내에 특정 원자재가 부족해 가격이 급등하면 일정 수량까지는 관세를 0%까지 낮춰 수입을 촉진하는 방식이다. 반면 할당량을 초과하는 부분에는 높은 관세를 적용해 국내 산업을 보호한다.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사과·배 가격이 전년보다 2배 이상 치솟으며 전체 물가 상승을 주도하자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등 열대과일에 할당관세를 적용했다.
지난해 정부가 할당관세를 적용한 품목은 125개로 이 중 농산물은 72개에 달했다.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한 긴급할당관세 적용 품목은 48개로 물가·수급 안정을 목적으로 한 할당관세 지원액은 9462억원을 기록했다.
사과, 배의 수요를 대체하는 동시에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였다.
◆물가상승 억제엔 역부족 = 하지만 할당관세만으론 먹거리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은 할당관세 적용으로 수입물가가 1% 떨어졌을 때 도매가격은 각각 0.78%, 1.12% 낮아졌지만, 소매가격은 0.25%, 0.32% 하락하는 데 그쳤다.
물가안정을 위해 할당관세 품목으로 지정돼 있는 닭고기와 당근은 수입가격이 1% 하락했을 때 소비자물가지수가 오히려 각각 0.02%, 0.004% 각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설탕은 수입물가가 1% 낮아져도 빵 가격은 0.004%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소비자물가를 잡기 위해 조단위 정부 재정을 투입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거나 오히려 역효과가 난 셈이다.
장설희 국회 예정처 분석관은 “일부 농산물은 국내 공급 여건과 유통구조상 가격 인하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할당관세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가 7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지연되며, 농축산물 물가 안정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다.
◆복잡한 유통구조 정리해야 = 할당관세에도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이 크지 않은 배경에는 4~5단계에 이르는 유통구조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수입 농산물은 일반적으로 수입업체, 보관 창고, 도매시장·물류센터, 소매상 등을 거쳐 소비자에게 공급된다. 이같은 유통 구조를 2~3단계로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최근 농식품 수급 및 유통구조 개혁 TF를 구성하고 개선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농축산물 및 식품·외식 등 품목별 수급 대책을 논의하고, 물가 불안의 원인으로 지목된 농축산물 유통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다.
또 정부는 연내 ‘농축산물 수입관세의 농업 분야 영향분석’ 연구용역을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