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국익중심 실용외교, 작은 성과가 주는 큰 교훈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자유는 인간의 본질적이고 양도불가의 천부인권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유권의 속성이 인간의 자유를 불완전한 것으로 만들었다. 한 개체의 제한되지 않은 자유가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해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이 국가를 필요로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인간은 국가를 통해서 완전하지는 않지만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고 안전을 향유하게 되었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구성원들의 안전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기 위해 창조된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안전과 행복에 기여해야만 그 존재의 의의가 있다.
국가의 이익은 국민 이익의 총합이다. 즉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최대한으로 지켜내는 것이 국가의 최대 이익이다. 생명과 재산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국민들을 지켜내는 것이 국가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전쟁이고 다른 하나는 외교다. 전쟁에 대비한 준비태세도 굳이 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전쟁은 승자에게도 최소한의 피해를 남긴다. 그래서 완전한 승리란 없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는 싸우지 않는 것이 낫다. 그것이 바로 평화이고 국익이다.
외교는 바로 이렇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찾는 것이다. 따라서 외교가 평화라는 국익을 추구하고, 가장 유리한 방법을 찾는 실용을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즉 ‘국익을 중심으로 한 실용외교’는 어느 한 정권이나 대통령의 정책이 되어서는 안된다. 외교부의 존재 이유 자체가 전쟁이 아닌 실용적인 방식의 국익추구인 것이다.
가치외교의 함정, 실용외교의 필요성
실용외교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우리가 지난 몇 년간 보아왔던 소위 ‘가치외교’다. 가치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만 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궁극의 목표다. 가치는 가끔 우리가 포기해야 할 것들과 희생해야 할 것들을 요구한다. 인간이 추상적인 가치를 궁극의 목표로 삼는 순간 인간은 수단으로 상대화되고, 인간이 수단화되면 전쟁은 국가가 활용가능한 선택지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치외교는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서 전쟁도 불사하게 되고 외교라는 행위 자체가 모순에 빠지게 한다. 외교는 본래 국가의 이익을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냉전 시기처럼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지만 외교가 국가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아직 대통령 선거 후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은 국익과 실용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인 방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접경지 주민들을 지옥같은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던 대북 전단지 살포와 확성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함으로써 실용적인 안보정책 하나가 어떻게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평화의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외교안보 진영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G7회의에 참석한 것이나 주변국 정상과의 통화 순서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들, 그리고 나토정상회의에 불참을 결정한 과정 모두가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실용외교의 단면들이다.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국내정치 상황과 중동에서의 분쟁에 개입된 미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한 나토정상회의 불참은 분명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토정상회의와 같은 폼나는 다자외교 무대에 등장하는 것은 일종의 로망이다. 하지만 국제정치적인 상황은 자칫 우리가 중동전쟁의 여파에 휘말리거나 트럼프의 반갑지 않은 청구서를 받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토 불참이 보여준 주체적 외교의 가능성
결과론이지만 나토정상들은 GDP 5%로 방위비 인상이라는 트럼프의 청구서를 받아들어야 했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이재명 대통령도 그 유탄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많이 주목받지 않지만 이재명정부의 불참 결정이 일본 총리 불참 결정의 이유가 되었다는 것도 한국 외교가 주변국 눈치나 보면서 주눅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예상치 못한 성과다. 강대국의 뒤만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외교가 국가들의 기준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 외교의 기준은 오직 국익과 실용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