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총격전에서 정권불안까지
사적 통화 유출로 외교 불신, 민심 이반 … 취약한 정치체제·군부 영향력·권위주의와 민족주의가 빚은 구조적 갈등
총격전 직후 양국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는 듯했으나, 상황은 곧 군사적 긴장으로 비화했다. 태국은 국경 순찰을 강화하고 일부 검문소 운영을 축소, 육로 관광객의 출입을 차단하는 제재 조치를 시행했고, 캄보디아는 대응 차원에서 태국산 농산물·미디어 수입을 제한하고 태국 관련 인프라에 대한 인터넷·전기 공급을 끊는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군사적 긴장도 해소되지 않았다. 6월 7일 태국 정부는 국경 지역의 군부대 증강을 공식 발표했으며, 6월 2일 캄보디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ICJ 제소를 결정했다. 양국은 JBC(공동경계위원회) 회의를 통해 협상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합의는 도출되지 못했다.
정권 뒤흔든 총리의 사적 통화 한통
여기에 양국 정치의 구조적 불안정성이 개입되면서 사태는 외교안보 전반의 위기로 확산되었다. 특히 6월 15일 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와 캄보디아 훈센 상원의장 간의 사적 통화가 유출되면서 태국 내정은 급속히 동요했다. 해당 통화는 패통탄 총리가 훈센을 “삼촌”으로 부르면서 시작된다. 이어 접경 지역을 지키고 있는 태국 제2군 사령관을 겨냥해 “삼촌이 2군 사령관처럼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등의 언급을 하며 비공식적 협조를 요청했다. 정치적 파문이 크게 번졌다.
프어타이당 주도 연립정부에서 두 번째 규모 정당인 품짜이타이당은 이를 ‘국가 주권 침해’로 규정하며 연정 탈퇴를 선언했다. 그 결과 정부는 하원 전체 의석 495석 중 256석으로 간신히 과반을 유지하게 되었고, 국정 운영의 안정성은 크게 흔들렸다. 야당과 보수 언론, 군부는 이를 ‘국가안보 붕괴’로 몰아가며 총리의 리더십에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야당이 된 품짜이타이당은 24일 패통탄 총리 불신임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다음 달 3일 본회의가 열리면 불신임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패통탄 총리는 불신임 투표 외에 법적 리스크도 안고 있다. 보수 진영이 장악한 상원은 헌법재판소와 국가반부패위원회(NACC)에 총리 탄핵을 청원했다.
한편, 태국 제2군 사령관 분신 팟끌랑 중장은 정부의 미온적인 군사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이는 군부의 정치적 존재감을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복수의 현지 언론은 현 상황을 2006년, 2014년 쿠데타 전야와 유사한 정치 국면으로 진단하고 있다.
반복된 민족주의 동원, 외교정책 신뢰 붕괴
이번 국경 충돌은 과거 프레아 비히어 사원을 둘러싼 분쟁과 유사한 방식의 민족주의 동원이 재현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사원 지역은 1907년 프랑스의 식민시절 지도가 기준이 되지만 명확히 경계가 정해지지 않아 분쟁의 소지가 되어 왔다.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해당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인근 경계선은 불확실한 상태였고 태국 내에서는 이를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여론이 존재한다. 200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이후 보수 진영의 반발이 거세졌으며, 당시 탁신 계열 정권의 유화적 대응은 강한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최근에도 보수 세력은 태국만 자원 공동개발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문제 삼아 프어타이당 정부의 외교노선을 ‘굴욕 외교’로 규정했다. 해당 MOU는 2001년 탁신 친나왓 총리 재임 시기에 체결된 실무적 협정이지만, 재협상 움직임만으로도 보수 진영은 ‘주권 포기’로 몰아가며 대중적 반발을 유도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국경에서의 군과 정부의 ‘약한 대응’을 비판하면서, 방콕과 국경 지역에서는 군사 행동을 촉구하는 시위가 산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시위대는 “영토를 지킨다”, “프레아 비히어는 태국 땅” 등의 구호를 외치며 군사정권 지지 단체와 연계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편, 캄보디아의 훈마넷 총리는 이번 사태를 정치적 정당성을 강화하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2023년 부친인 훈센 전 총리로부터 실질적인 권력을 승계한 이후, 훈마넷 정권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이어오며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경 갈등은 민족주의를 동원해 내부 지지를 결집시키는 유효한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다. 훈마넷은 대규모 애국 집회를 조직하고 ‘국가 주권’과 ‘영토 수호’를 전면에 내세워 정권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는 한편, 외부 위협을 부각함으로써 국내의 비판 여론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양국은 6월 19일 재개된 공동경계위원회(JBC) 회의에서도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후속 회담 일정 역시 불투명하다. 4개 주요 분쟁지역에 대한 입장 차가 여전히 크며, 사적 통화 유출 사건은 양국 간 외교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한 상태다. 캄보디아는 ICJ 제소를 결정했으나 태국은 이를 내정 간섭으로 간주하고 있어, 외교적 해법 도출은 더욱 어려워졌다.
외교 사유화와 비공식 네트워크의 위험성
이번 사태 이면에는 탁신 전 총리와 훈센 전 총리 간의 사적 유대가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이후 탁신은 캄보디아에서 일시적으로 훈센의 보호를 받았고, 2009년에는 캄보디아 정부의 경제 자문으로도 임명되었다. 이들의 관계는 통신, 카지노 사업 등과 얽혀 정치적 의혹의 중심에 있으며, 보수 진영은 이를 “프어타이–캄보디아 커넥션”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현재 양국은 패통탄과 훈마넷이라는 차세대 지도자 체제로 전환되었지만, 비공식 외교 채널은 여전히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사적 통화 유출은 이 비공식 경로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고, 이는 양국 지도자 간뿐 아니라 국민들 사이의 상호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외교정책이 국민적 합의보다 정치 엘리트의 사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에 대해 학계와 시민사회는 비판하고 있다. 이른바 ‘외교의 사유화’는 외교 역량과 국가 신뢰 모두를 훼손하는 구조적 문제로 제기된다.
사태 장기화 속에서 상호 보복 조치도 강화되고 있다. 캄보디아는 태국산 농산물과 전자제품, 콘텐츠에 대한 수입 제한을 검토 중이며, 태국은 포이펫 지역 방문 자제령과 함께 캄보디아 내 카지노 취업 금지 조치를 시행 중이다. 국경 통제 강화 및 비자 발급 지연 등 실질적 피해가 일반 시민들에게도 확산되고 있다.
신뢰 회복과 민주적 전환이 해법이다
이번 국경 분쟁은 영토 경계 문제를 넘어, 양국의 정치 체제 취약성과 군부의 영향력, 권위주의와 민족주의의 교차점에서 발생한 구조적 갈등이다. 태국에서는 연정 붕괴 위기와 정치적 리더십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으며, 캄보디아는 권위주의적 통치를 유지하며 민족주의로 정당성을 강화하고 있다.
외교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정치 내부의 투명성과 정당성을 회복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외교 정책 결정에서 군부와 극우 정치 세력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시민사회의 참여와 감시를 반영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 단기적 민족주의 동원은 정치적 득실에는 유리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양국 관계의 지속 가능성과 지역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아세안과 국제사회는 이번 분쟁이 군사적 충돌로 확산되지 않도록 중재 노력과 실질적 협력 방안을 강화해야 한다. 이 갈등은 단지 양국 간 문제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전체의 정치·안보 질서에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궁극적으로 이번 국경분쟁의 해법은 일시적 정상회담이나 외교 이벤트가 아닌, 양국 내부의 정치 신뢰 회복과 시민 중심의 외교 패러다임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