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트럼프 색 짙어지는 미 연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폭 강화했던 대형 은행의 자본건전성 규제를 다시 완화하기로 했다. 트럼프정부는 대형 은행들이 규제 완화로 생긴 여윳돈으로 미국 국채를 대거 매입하며 채권 금리를 낮춰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연준은 25일(현지시간) 이사회를 열고 대형 은행에 적용되는 보완적 레버리지비율(SLR) 기준을 수정해 이들 은행 및 자회사의 자본금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규칙 제정 예고안을 가결했다. SLR은 은행의 자본적정성을 측정하는 규제 지표로, 대형 은행들이 속속 무너졌던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도입된 핵심 규제 중 하나다. 국제기준인 국제결제은행(BIS) 바젤Ⅲ 체제에 따라 2018년부터 도입됐다.
연준의 은행 자본규제 완화로 미국채 매입 확대 기대
월가에서는 SLR 산출 시 모든 자산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한계가 있다 보니 은행들이 국채 거래를 기피하게 되는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SLR 기준을 낮추거나 비율 산정 시 안전자산인 국채를 제외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은행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SLR 규제 완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이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를 낮추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갈등은 이제 설전 수준을 넘어 조기 레임덕 유발 수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짙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파월 의장 후임으로 3~4명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후 기자 회견에서 ‘차기 연준 의장 후보 인터뷰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차기 의장으로) 선발할 세 명 또는 네 명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월 의장의 금리 관망 기조(wait and see)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조기 후보 인선을 검토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년이나 3년, 아니면 1년 후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금리를 인상해서 인플레이션을 해결하는 등 다른 조치도 취하면 된다고 말했다”면서 “하지만 그는 매우 정치적인 인물인 것 같다. 그는 매우 바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의 요구대로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 파월을 비난했다. 후임자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케빈 해싯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주디 쉘튼 전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미국 대표, 데이비드 말패스 전 세계은행 총재 등이 차기 연준 의장 후보로 거론된다.
미국 베팅사이트에서 매긴 순위를 보면 월러 45%, 워시 26%, 해싯 18%, 베선트 11%, 쉘튼 10% 순이다.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매파 중 최강 매파여서 통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고, 베선트 장관은 가장 실력파이지만 그를 연준 의장에 임명하면 재무부 장관은 누구를 시켜야 할지 고민이라는 의견이 많고, 그나마 월러 정도가 가장 무난하다는 평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인하 요구에 연준 인사 중 매파 성향(통화긴축 선호)으로 평가되는 미셸 보우먼 부의장이 이르면 7월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보우먼 부의장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체코 중앙은행 주최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억제된 상태를 유지한다면 이르면 다음 (7월)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토퍼 월러 연준 이사도 지난 20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7월 FOMC 회의 때 금리인하를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월러는 “다음 통화정책 회의에서 금리인하를 고려하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에 찬성한다”며 “고용 시장이 급락할 때까지 기다린 뒤 인하를 개시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국 금리마저 트럼프 대통령이 좌지우지 하는 세상 올까
연준 위원들의 구성을 살펴보면 상시투표권을 가진 7명 중 트럼프 1기 당시에 임명한 소위 공화당파가 3인(파월, 월러, 보우만) 바이든이 임명한 소위 민주당파가 4인(제퍼슨, 바, 쿡, 쿠글러)이다. 지금은 민주당파가 더 많지만 내년이면 민주당파인 쿠글러의 임기가 1월에 끝나고 5월이면 파월도 의장의 임기가 끝나 새로운 연준 의장이 탄생하면 공화당파가 4대 3으로 더 많다. 드디어 트럼프 대통령은 미 상·하원과 연방 대법관, 연준 모두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제 미국 금리마저 트럼프 대통령이 좌지우지 하는 세상이 올까.
안찬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