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기초단체장 출신 대통령 시대
기초단체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지 한달 가까이 지났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존 여의도 출신 대통령과 달리 기초단체장과 광역단체장을 거쳤다. 그간 광역단체장 출신 대통령은 있었지만, 기초단체장 출신은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가 지방자치 부활 30년이 되는 해라 의미가 더해졌다.
이재명정부는 실용정부를 표방한다. 이재명표 실용은 ‘현장에 강하고 소통에 능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국무회의 등 각종 회의에서 구체적인 사안을 두고 토론한 뒤 업무 지시를 한다. 그리고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주민들이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는지 점검한다.
‘현장에 강하고 소통에 능한 방식’의 실용정부 선보여
취임 직후인 지난 5일 열렸던 ‘안전치안점검회의’가 대표적 사례다. 장마철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대통령이 단체장 시절 경험했던 빗물받이 문제 등을 지적하자 재난대응부서 공무원들은 일제히 현장으로 달려갔다. 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대응체계 정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인사에서도 실용이 묻어났다. 배경훈 과학기술부 장관 후보자나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지명은 현장을 중시한 것이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는 진영과 이념에 얽매이지 않은 인사다.
이런 모습은 일선 기초단체장들의 일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기초단체장들은 매일 지역에서 주민들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각종 사업과 정책에 대한 반응을 듣고 현장에서 실행에 옮긴다. 선거 때는 서로 얼굴을 붉히다가도 끝나면 주민 화합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여의도처럼 이념과 진영을 중시하면 일을 잘할 수 없는 자리가 기초단체장이다. 이 대통령도 그랬다.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시절 모란시장 개고기 유통시장 철거, 청정계곡 복원 사업 등은 직접 현장에서 답을 찾은 사례다. 성남시장 시절 시청에 출근할 때는 일부러 걸어서 보도블록 파손 등 현장의 문제를 눈으로 확인했다. 지금도 이 대통령은 기초단체장 시절부터 시작한 소통방식을 선호한다. 그리고 SNS나 문자 등을 통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새로운 정치 스타일을 만들었다.
지난 25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현장에서 이 대통령이 바로 군 공항 이전 갈등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기초단체장 시절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기초단체장은 중앙부처에서 결정된 정책과 사업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자리라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능하다.
기초단체장 출신 대통령의 출현은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예고한다. 중앙부처가 정책을 공급하는 곳이라면 기초지자체는 정책이 소비되는 곳이다. 앞으로 중앙부처는 정책을 수립할 때 기초지자체나 주민들의 수용성 등을 중요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만큼 정책 입안과정에서 ‘현장’과 ‘소통’을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재명정부 출범은 풀뿌리 민주주의의 질적 도약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중앙무대에서 성장해 대선에 도전하던 전례를 깼다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 또한 적지 않다. 그동안 변방의 사또쯤으로 인식됐던 기초단체장들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다. 기초단체장 시절 체화된 이 대통령의 실용이 국정운영에 반영되고 있는 만큼 지방자치 또한 새로운 평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지방자치가 부활한 지 30년이 되는 해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을 주민직선으로 뽑은 이후 지방자치는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생활 자치’로 발전해 왔다. 초기에는 단체장의 비리 등으로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이 컸다. 그러나 코로나19 같은 국가위기 상황이나, 복지 등에서 정부를 앞선 정책들이 나오면서 ‘지방자치의 효능감’을 체감한다는 주민들이 많아졌다.
새 정부 지방의 위기 어떻게 해결할지 기대감 커
현재 지방은 위기다. 지방자치단체는 재정권 입법권 행정권 모두를 중앙에 의존하고 있다. 지방분권 균형발전 지방소멸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그래서 ‘반쪽짜리 지방자치’라 말한다. 역대 대통령들 모두 지방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기초단체장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고 이런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방자치는 작지만, 주민의 삶을 바꾸고 국가의 미래를 바꾸는 힘이 있다.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불린다. 새 정부가 지방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지 두고 볼일이다.
홍범택 자치행정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