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업계, 트럼프에 '한국 저약가' 개선 촉구
“미국 제약사 혁신가치 인정 안해” … 향후 협상서 약값 쟁점화 가능성
미국 제약업계가 자사가 수출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게 책정해 피해를 주는 국가로 한국 등을 지목하고 미국 정부에 무역 협상을 지렛대 삼아 이들 국가의 약값 정책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국내서 활동하는 다국적제약사들의 ‘민원’이기도 하다. 이에 트럼프 미 행정부가 한국과 무역 협상에서 미국산 신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제약사에 지급하는 보험 급여도 올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 제약업계 로비단체인 미국제약협회(PhRMA)는 6월 27일(현지시간)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외국 정부의 불공정한 제약 정책·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무역 협상을 지렛대로 사용하라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제약협회는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로 한국,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유럽연합(EU) 등을 지목했다. 제약 소비가 많은 이들 고소득 국가를 미국 정부가 가장 우선하여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와 관련 미국제약협회는 “한국 건강보험 당국이 한국 시장에서 의약품을 판매하고자 하는 제약사들에게 힘든 심사를 강요해 시장 진출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은 건강보험 당국이 약값을 공정한 시장 가치 이하로 억제하기 때문에 제약 예산에서 혁신 신약에 쓰는 비중이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소득 국가보다 낮다고 주장했다.
미국제약협회가 제출한 의견서는 USTR이 외국 정부의 불공정한 약값 정책을 조사하는 과정에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 것이다. USTR 홈페이지에는 이날(6월 30일) 기준으로 58개 의견서가 접수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2일 행정명령을 통해 USTR과 상무부에 “다른 나라가 의도적이며 불공정하게 자국 약값을 시장 가격보다 낮추고 미국의 가격 급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미국 제약사들이 신약을 개발하는 데 엄청난 연구개발비를 쓰지만, 그런 약을 미국에서만 비싸게 팔고 외국에서는 싸게 팔다 보니 미국이 연구개발비를 전적으로 부담해 다른 나라의 약값을 보조한다는 게 트럼프의 주장이다.
미국상공회의소는 한국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약값을 매우 낮게 책정해 미국 제약사와 생명공학 산업이 개발한 혁신 신약을 충분히 보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13~2014년에 전 세계에서 출시된 신약 500개 중 20%에만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있으며, 이런 신약의 출시부터 건강보험공단의 급여 지급까지 평균 40개월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생명공학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생명공학혁신기구(BIO)도 한국의 약값 책정 제도가 여러 중첩되는 가격 인하 장치를 통해 품질과 공급 안정성을 우선하는 미국 제조사들의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약화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제약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한 미국 내 ‘최혜국대우’(MFN) 가격에 대해서는 투자와 신약 개발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의 약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국의 불공정한 정책에 대응하는 동시에 미국에서 판매되는 의약품에는 다른 선진국이 지불하는 약값 중 최저 가격에 해당하는 ‘최혜국대우’ 가격을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제약사가 미국에서 약값을 낮추는 대신 다른 나라에서 돈을 더 벌 수 있도록 제약사의 외국 시장 접근 확대를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