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집값이 교육 지배하는 사회, 미래 없다
또 시작됐다. 서울 집값이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꿈틀거렸다. 이재명정부 출범 후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남3구)와 마포·용산·성동(마용성) 등 주요 지역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자 정부는 급하게 대출규제와 실거래 조사로 불끄기에 나섰다. 시장은 관망세지만 집값 상승 불안은 계속된다.
문제는 집값 오르는 것 자체가 아니다. 이 나라에서 부동산은 이제 교육 결혼 출산 계층이동, 심지어 국가경쟁력까지 좌우하는 절대권력이 돼버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의 기회가 집값에 의해 결정되는 현실이다. 교육 불평등을 넘어 교육 계급사회가 돼버린 것이다.
강남 3구 의대 독점, 이게 나라냐
숫자가 말해준다. 2024학년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13.3%가 강남 3구 출신이다. 서울대 의대는 23.9%, 가톨릭대 의대는 무려 34.7%다. 전국 인구의 2%도 안 되는 지역에서 의대생의 1/3을 배출한다. 이게 개인의 노력과 실력의 결과일까?
강남 3구에는 특목고 자사고 고액사교육 내신관리 의대컨설팅이 하나의 교육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월 수백만원짜리 사교육과 입시컨설팅을 받으며 의대 진학을 위한 완벽한 로드맵을 밟아간다. 이것은 ‘부모 찬스’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 문제는 이런 구조가 자기복제를 한다는 사실이다. ‘좋은 학군 = 높은 집값’이라는 공식이 학군 프리미엄을 더욱 강화하고, 높아진 집값은 또다시 서민층 아이들을 좋은 교육에서 배제한다. 결국 교육은 계층상승의 사다리에서 계층유지의 특권으로 바뀌어버렸다. 부모의 부동산이 자녀의 교육을 결정하고 그 교육이 다시 부동산을 대물림하는 악순환, 이게 바로 부동산 기반 세습 사회의 민낯이다. “용이 나는 개천은 이제 강남 3구를 흐르는 양재천과 탄천밖에 없다”는 우스개까지 나돌 정도다.
문제는 교육에서 그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마저 집이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이 되고 있다. 20·30세대가 결혼을 기피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주거비 부담이다. 이들에게는 아이를 낳지 않는 게 아니라 낳을 수 없는 현실이 닥쳐있다. 부모 찬스 없는 청년들은 전세도 못 구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 정부는 출산장려금을 쏟아붓지만 헛돈 쓰는 꼴이다. 주거 안정 없는 출산정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출산은 낳은 뒤 지원이 아니라 낳기 전 조건의 문제다.
서울 집값이 이제 뉴욕과 비슷하다. 평균소득 대비 주택가격으로 보면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집 사기 어려운 도시다. 소득은 제자리인데 집값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한국의 집은 사는 곳이 아니라 계급을 나누는 잣대가 돼버렸다.
더 심각한 건 이 광풍이 국가의 미래까지 잡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산업과 기술혁신은 뒷전이다. 한국 가계자산의 77% 이상이 부동산에 몰려 있다. 창업이나 기술개발, 벤처투자로 가야 할 돈이 모두 부동산 투기에 빨려 들어간다. 이게 바로 ‘부동산 공화국’의 현실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AI 초강국’ ‘벤처 강국’을 외친다. 돈은 다 부동산에 쓸어 넣고 무슨 혁신을 하겠다는 건가.
부동산이 삼킨 국가경쟁력, 언제까지
비극의 뿌리는 부동산을 투기수단으로 만든 정책 실패에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재명정부가 제시한 ‘투기자산에서 생활자산으로’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구조전환의 시작이어야 한다. 첫째, 금융정책을 확 바꿔야 한다. 대출은 실제 거주할 사람에게 주고 세금은 투기꾼들을 겨냥해야 한다. 지금처럼 돈 있는 사람들이 대출까지 받아 가며 집을 쓸어 담는 구조로는 안 된다.
둘째, 박근혜정부 때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오늘날 자산양극화를 만들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무작정 많이 짓는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한 공급인가’를 따져가며 정교하게 접근하는 것이다. 셋째, 부동산에 잠긴 돈을 AI 반도체 스타트업 같은 미래산업으로 돌려야 한다. 부동산 리셋이 곧 경제체질 개선이다.
이재명정부가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공급이나 세제 같은 기술적 처방을 넘어 국민 인식까지 바꿔야 한다. 집은 투자수단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주거는 돈벌이가 아니라 기본권이다. 교육은 주소지가 아니라 개인의 능력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출산은 집 때문이 아니라 삶의 의지로 가능해야 한다. 부동산이 국가의 미래를 계속 잡아먹게 둘 수는 없다. 경쟁력은 집값이 아니라 사람에서 나와야 한다.
김기수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