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1973년 이후 최악의 성적
상반기 10.8% 급락 … 관세정책·재정불안·연준 독립성 우려에 투자심리 흔들
금융그룹 ING의 외환 전략가 프란체스코 페솔레는 “달러는 트럼프 2.0의 변덕스러운 정책들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달러 약세의 배경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혼선, 연방정부의 막대한 차입 수요, 연방준비제도의 독립성 훼손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크고 아름다운’ 세제 개편안이 향후 10년간 3조2000억달러의 재정적자를 추가로 야기할 것이란 전망까지 더해지며 미 국채 시장에서 자금 이탈을 촉진하고 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은 미국 외 국가들에 더 큰 경제적 타격을 주고 달러 가치를 끌어올릴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달러는 급격한 약세를 보였다.
유로화는 연초 월가 주요 투자은행들이 1달러와의 등가(parity)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오히려 13% 상승해 1유로당 1.17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투자자들이 미국의 성장 둔화 리스크에 주목하는 한편, 독일 국채 등 유럽의 안전자산으로 수요를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앤드루 볼스 핌코(PIMCO) 글로벌 채권 최고투자책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4월 ‘상호 관세’ 발표 이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는 위협이 없지만, 그렇다고 달러가 크게 약세를 보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달러 자산에 대한 환위험을 줄이기 위해 헤지 전략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움직임 자체가 달러 약세를 가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달러 하락에는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도 크게 작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속에 시장에서는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가 최소 다섯 차례(각각 0.25%) 인하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되고 있다.
한편, 달러 약세는 미국 주식 시장의 반등을 뒷받침했지만, 유럽 주식 대비 환산 수익률 기준에서는 여전히 뒤처진 상황이다. 연기금과 중앙은행 등의 대형 투자자들 역시 달러와 미국 자산에 대한 투자비중 축소 의사를 밝히며, 달러의 안전자산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페솔레는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더 많은 환헤지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 또한 미국 주식 상승세가 달러에 반영되지 못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달러 자산 가치 하락 우려는 금 투자 수요 확대로도 이어졌다. 올해 금 가격은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의 지속적 매입 속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현재 달러는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몰린 ‘약달러 베팅’의 되돌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취리히 보험사의 수석 시장 전략가 가이 밀러는 “약달러는 이제 혼잡한 거래(crowded trade)가 되었고, 하락 속도는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