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방지·무기탐지…틈새공략 스타트업
백내장수술로봇 개발기업도 거액투자 받아 … 바이오테크 분야 새로운 유망시장 열어
틈새시장을 적극 공략하는 바이오테크 스타트업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남성의 정자를 우편으로 받아 냉동하는 스타트업들이 다수 생기는가 하면,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생물센서로 생화학무기를 감지하는 기술을 내세운 스타트업은 거액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인간 수술진을 대신해 백내장수술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기업도 투자자들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3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보스턴의 바이오테크 스타트업 창업자인 알렉산더 매키넌은 만성 피로감에 병원을 찾았다. 혈액검사 결과 극심한 피로의 원인은 테스토스테론 수치 저하였다. 그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스테로이드 주사를 처방받았지만 정자 수가 급감하는 부작용이 걱정이었다. 아직 아이를 가질 계획은 없었지만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매키넌은 정자를 냉동하기로 결심했다.
정자은행은 수십년 전부터 존재했지만 최근 수년새 저렴한 화학보존제가 개발돼 집에서도 샘플을 채취하고 수일간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병원이나 클리닉을 방문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생겼다. 이러한 변화는 건강을 중시하는 남성들의 인식전환과 맞물리며 앱을 통해 생식건강을 분석하고 정자를 우편으로 보관해주는 스타트업 시장을 열었다.
매키넌은 레거시(Legacy)라는 스타트업을 통해 자가채취키트를 주문했다. 이 키트에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 보존제 역할을 하는 분홍색 액체가 담긴 유리병, 튼튼한 지퍼형 용기, 그리고 운송중 샘플 훼손을 막기 위한 자물쇠가 포함돼 있다. 샘플을 채취한 뒤 그는 택배로 익일 배송했다.
레거시는 연 40억달러 규모 미국 남성 불임시장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 중 하나다. 뉴욕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4만명의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저스틴 비버를 포함한 유명인사와 벤처캐피털로부터 500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모회사 ‘기브레거시(Give Legacy)’ 창업자 칼레드 크테일리는 “필요한 건 스마트폰과 단 5분의 시간뿐”이라고 말했다. 레거시 정자보관 비용은 연간 100~150달러다. 기존 병원에 비해 매우 저렴하다. 수개월에 걸쳐 수천만원이 드는 난자채취·냉동에 비하면 가격차는 더욱 확연하다. 크테일리는 “난자냉동과 비교하면 가격차이가 정말 크다”고 말했다.
4000만달러 넘는 투자금을 유치한 스타트업 펠로우는 미국 11개 주요 병원, 40개 재향군인병원, 2500개 클리닉과 협력하고 있다. UC샌프란시스코대 비뇨기과 전문의이자 펠로우 최고의료책임자인 제임스 스미스 박사는 “남성들이 자신의 몸에 점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덴마크와 영국에 본사를 둔 엑스시드 헬스(ExSeed Health)도 유럽 전역 고객에게 자가진단키트를 보내고 스마트폰으로 검사결과를 제공한다.
보통 대부분의 남성은 자신의 생식능력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2017년 옥스퍼드대 연구논문에 따르면 전세계 남성의 정자 수는 지난 40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그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식습관과 스트레스 등이 주요 요인으로 지목된다. 때문에 요즘은 정자 검사와 냉동을 동시에 권하는 추세다.
이러한 정자냉동 스타트업의 주요 고객층은 △향후 임신을 준비하고 싶은 남성 △나이에 따라 정자 수 감소를 우려하는 남성 △암 등 건강 문제로 생식 능력 유지가 필요한 남성 △군인 등 고위험 직업군 등이다.
레거시는 일부 미군을 대상으로 무료체험서비스를 제공한다. 보험 적용범위도 점점 넓어지고 있기에 많은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이 서비스를 권장하고 있다. 레거시는 미 보건복지부(HHS)와 서비스 확대를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정자의 생존율을 높이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예전에는 정자 샘플이 1시간 안에 전문가에게 도달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버퍼 미디엄(buffer medium)’이라는 보존액 덕분에 택배운송이 가능해졌다. 이 액체는 영양분이 풍부하고 온도변화로부터 정자를 보호해준다. 레거시는 샘플에 담긴 정자 손실율이 시간당 0.4%에 그친다고 밝혔다. 펠로우는 샘플을 최대 52시간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스타트업에 샘플이 도착하면 냉동작업이 시작된다. 정자를 -196℃까지 서서히 냉각해야 한다. 냉동 전 세포동결보호제를 첨가해 세포 손상을 막는다. 이 작업은 2~3시간 정도 걸린다.
비벌리힐스 소재 생식의학클리닉 전문의 웬디 창은 “환자의 약 5~10%는 병원에서 즉시 정자 채취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이같은 서비스가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NATO의 첫 투자대상 된 바이오 스타트업
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조성한 이노베이션펀드가 생물학무기 방어역량 강화를 위해 처음으로 바이오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노베이션펀드는 영국 스타트업 ‘포털 바이오텍(Portal Biotech)’에 대한 3500만달러(약 480억원) 규모의 투자라운드를 공동 주도했다. 해당 기업이 보유한 단백질시퀀싱 기술을 활용해 생물학무기와 인공 병원균의 탐지·방어 체계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노베이션펀드 변호사 아나 베르나르도-간세도는 “우리는 생물학적 위협을 탐지하고 모니터링하며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는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펀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설립됐다. NATO의 방위 기술 강화를 위해 10억달러 이상 규모의 투자계획을 추진 중이다.
포털 바이오텍은 AI가 결합된 생물센서를 사용해 단일분자 수준의 병원체를 현장에서 실시간 감지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 스타트업 CEO 앤디 헤론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이 기술은 질병 측정과 팬데믹 예방, 약물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다”며 “대형 실험실에서 며칠씩 걸리던 분석을 현장에서 수시간 만에 수행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또 “AI 생물센서로 수질부터 농작물 상태까지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병원체뿐 아니라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위협까지 감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포털 바이오텍은 생물테러 대응 외에도 정밀의료·신약 개발에 활용가능한 휴대형 장비로 사업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이번 투자라운드에는 NATO 이노베이션펀드 외에도 얼리버드 VC와 사이언스 크리에이츠 VC, 필라 VC, 8VC, We VC, 영국정부 산하 브리티시 비즈니스뱅크 등이 참여했다.
로이터는 “이번 투자는 NATO가 국방기술을 생명공학과 AI, 생물보안 등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며 “포털 바이오텍의 기술은 예방적 감시와 위기대응 속도, 다중용도 활용가능성을 모두 갖춘 차세대 생물학적 방어 플랫폼으로 평가된다”고 전했다.
세계 첫 백내장수술 로봇 나올까
3일 포브스에 따르면 백내장수술을 자동화하기 위한 정밀로봇 수술플랫폼 ‘오리옴(Oryom)’을 개발중인 이스라엘 스타트업 ‘포사이트 로보틱스(ForSight Robotics)’가 1일 1억2500만달러(약 17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번 투자라운드는 이클립스 벤처스가 주도했으며 외과로봇수술의 전설이자 세계적 의료로봇기업 ‘인튜이티브 서지컬’ 공동창업자인 프레드 몰, 다수의 로봇기업을 탄생시킨 이스라엘 텍니온대 모셰 쇼함 교수 등이 참여했다.
미국에서만 매년 400만건 이상의 백내장수술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0억명 이상이 예방가능했던 시력손실을 겪고 있다. 포브스는 “인구고령화와 안과전문의 감소가 맞물리며 기존 의료시스템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요 공백이 생기고 있다”고 분석했다.
포사이트 공동창업자이자 최고의료책임자인 조셉 네이선 박사는 포브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보는 이 격차는 사람의 힘으로는 메울 수 없다. 로봇이 이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백내장 수술은 극히 정밀한 작업으로 작은 공간에서 미세하게 움직이는 손기술이 필수다. 포사이트는 “오리옴 플랫폼은 이러한 복잡성을 해결하기 위해 설계됐다”며 “AI 알고리즘과 컴퓨터 비전, 미세 기계공학을 활용해 정밀도를 높이고 외과의사의 육체적 피로도까지 줄여주는 기능을 탑재했다”고 밝혔다.
포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1년간 20명 이상의 안과전문의들이 동물 눈 모델을 활용해 수백건의 테스트수술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특히 인체구조와 유사한 돼지 눈을 사용해 시스템을 검증했으며, 이는 실제 안과수술 훈련에서도 자주 활용되는 방식이다.
아직 인간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술은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포사이트는 올해 안 임상시험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초기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 확보한 1억2500만달러 투자금은 인허가 절차와 상용화 준비과정에 활용된다.
포사이트 측은 “우리는 단순한 수술보조를 넘어 전세계적인 안과수술 인력부족 문제를 ‘기계’로 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며 “정밀성과 일관성을 요구하는 의료 분야에서 로봇이 인간을 보완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밝혔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