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미 재무부가 국민연금을 압박하는 이유

2025-07-04 13:00:02 게재

미국이 무역협정 조건으로 주요 교역국들에게 환율 개입을 자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5월 중순부터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5월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한미무역협상에서 환율이 논의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5일 의회에 보고한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반기보고서(보고서)에서 한국을 환율감시대상국으로 재지정했다. 특히 미국은 국민연금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보고서는 “국민연금이 외화 선물환 매입한도를 지난해 9월 10억달러에서 30억달러로 3배 늘렸고, 한국은행과 외환스와프(선물환과 현물환 교환 거래) 한도를 500억달러에서 650억달러로 확대했다”고 밝히면서 한국 정부에 “외환시장 개입은 시장질서가 심각하게 교란되는 예외적 상황에 한정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보고서는 조 바이든 행정부 당시에 없었던 “불공정한 환율 관행이 포착된 국가에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를 권고할 수 있다”는 협박성 문구를 추가로 담았다.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는 시장충격 줄이는 긍정적 조치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압박수단으로 읽혀진다. 한은과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자체가 미국 재무부의 환율감시 대상국 지정에 직접적인 요건이 될 수 없다. 국민연금은 금융당국이 아니라 자체 투자전략에 따라 해외자산을 운용하며 환 헤지(위험 회피)를 병행하는 ‘독립적인 기금운용기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은 국민연금에 감사를 표해야 할 처지다. 국민연금이 진행한 외환스와프는 대규모 해외투자로 인한 환율상승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 미국의 이해관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보통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환 오픈’ 상태에서 외화자산을 운영한다. 그러다가 환율 부침이 심해지면 일부 자산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전략적 환 헤지’를 구사한다. 글로벌 자본시장의 ‘큰손’이 된 국민연금이 공개시장에서 환 거래를 하면 환율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는 시장충격을 줄이려는 긍정적 조치인데도 이를 압박하는 미국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해외자산은 2024년 말 기준 4700억달러(약 643조9000억원)로 전년 대비 460억달러(약 63조2000억원) 증가했다. 글로벌 주식의 수익률과 해외자산에 대한 배분비율이 꾸준히 증가한 탓이다. 국민연금은 해외주식에 35.6% 해외채권에 7.3%를 배분했고, 대체투자까지 합하면 약 57%를 해외에 투자했다.

3월말 기준 국민연금 적립금은 1227조원이다. 2023년말 1000조원을 돌파한 이후 빠른 증가세다. 4월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보험료율은 2026년부터 8년간 매년 0.5%p씩 올라 현재 9%에서 13%로 올라간다. 이것에 더해 기금수익률까지 늘어난다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최대 3000조원 이상 될 수 있다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입장이다.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로 환율이 폭등하면서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 헤지를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은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이상으로 5거래일 연속 상승하면 달러를 매도해야 한다는 지침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서는 지난달 10일(현지 시간) 국민연금이 내부 투자지침에 따라 달러 매도를 일단 중단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지난달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로 돌아오면서 기금운용위원회 차원에서 전략적 환 헤지를 정리했다. 환율이 안정권에 들어와 더 이상 한국은행과 외환스와프를 진행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국민연금이 올해 시장에서 달러를 약 500억달러(약 68조원) 판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미국, 국민연금에 미국채 매입 강력히 요구할 수 있어

이번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는 단순한 위험 회피 수단을 넘어, 정책적·수익적 성과를 동시에 달성했다. 환율이 고점을 찍던 시기에 달러를 매도하고, 이후 원화가 강세로 전환되자 조기에 거래를 종료한 결정은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면서 실질적인 환차익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특히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직접 개입 없이도 원화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던 점은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간 공조체계의 모범사례다.

현재 원·달러 환율이 1360원 전후로 요동치고 있다. 조만간 구체화될 한미통상협의의 결과가 원·달러 환율의 단기적인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2025~2026년 미국의 가장 다급한 문제는 미국채를 매입할 해외 주체를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국민연금은 대단히 매력적인 해외 투자자로 거듭나고 있다. 미국은 관세협상을 진전시키지 못할 경우 국민연금에게 미국채 매입을 강력히 요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이 해외투자원칙을 견지해야 할 이유다.

박진범 재정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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