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담배업계 비밀문서에 나타난 마케팅 전략
미래·잠재 고객 ‘청소년·여성’에 은밀한 접근
소셜미디어 활용, 과일 맛 첨가 … 편의점 활용 신종담배 시장 진입
담배업계가 청소년과 여성을 목표로 교묘한 마케팅 전략을 펼쳐왔다는 사실이 미국에서 공개된 내부 기밀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신종담배 업체가 어떻게 젊은 층을 유인하고 규제망을 피하는지, 치밀한 ‘플레이북(성공매뉴얼)’을 보여주고 있어 국내 담배규제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4일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에 따르면 최근 정책연구관리시스템(프리즘)에 게재한 ‘담배업계 마케팅 전략 분석 및 담배규제정책에의 함의(2024)’ 연구보고서(연구책임자 이성규)에 미국 담배업계의 비밀문서 내용이 담겼다.
이 ‘비밀문서’는 미국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법정 투쟁의 결과물이다. 1990년대 미국 주 정부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대규모 소송과 1998년 ‘마스터 합의(Master Settlement Agreement)’를 통해 담배회사들은 수백만 페이지에 달하는 내부 문서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게 됐다.
최근 전자담배 제조사 쥴랩스(JUUL Labs) 역시 2021년 노스캐롤라이나주 정부와 소송 합의에 따라 내부 문서를 공개했다.
보고서가 밝힌 담배업계의 첫 번째 전략은 ‘특정 인구층 타겟팅’이다. 미국 담배회사들은 오래전부터 ‘미래 고객’인 청소년과 잠재적 소비자인 여성을 겨냥해왔다. 청소년에게는 과일 맛, 사탕 맛을 첨가하고 만화 캐릭터를 활용했다. 여성에게는 흡연을 ‘독립적 여성의 상징’으로 포장하거나 날씬한 체형과 연관 짓는 전략을 사용했다.
둘째는 ‘브랜드 확장·스폰서십’, 셋째는 ‘미디어·프로모션’ 전략이다. 담배 브랜드 로고를 옷, 라이터 등 비(非) 담배 제품에 붙이고 F1 경주나 음악 페스티벌을 후원하며 브랜드를 노출했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간접 홍보가 핵심 수단이 되고 있으며, 이는 쥴이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폭발적 유행을 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넷째는 정책 영향력 행사다. 미국 담배업계는 정치인과 정책 결정권자에게 접근해 “규제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를 펼쳐 세금 인상, 가향 규제 등을 저지해왔다.
다섯째는 쥴의 미국 내 성공 사례를 통해 ‘신종담배 시장 진입 전략’을 집중 조명했다. 이들은 ‘금연’이 아닌 ‘전환(Switch)’이라는 메시지를 통해 기존 흡연자에게 더 나은 대안임을 강조하면서도,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의점을 핵심 유통 채널로 삼았다.
보고서는 미국에서 확인된 담배업계의 이런 ‘비밀 플레이북’이 국내 시장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보고서에서는 대응책으로 △신종담배 수입과 관련된 제도적 장치가 필요 △편의점 등에서 담배 진열 및 광고에 대한 규제 강화 △담배의 맛과 향을 다양하게 바꿀 수 있는 가향물질의 첨가를 금지 △범정부와 다분야 전문가 등 협의체 만들어 신종담배 시장 진입 및 확산을 예방하고 대응 시스템 구축 △지속 모니터링과 실질적 법적 책임 물을 수 있는 개선 필요성 등을 제시했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