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장

농촌 소멸 막을 ‘햇빛연금’, 농민이 답 찾았다

2025-07-07 13:00:02 게재

사기꾼 소리 들어도 10년 외길 고집 … “농사를 실제 짓는 이에게 혜택 가는 원칙이 핵심”

“약 10년 전 일본에 갔을 때 콩밭 위에 태양광 패널이 쫙 깔려 있는 걸 우연히 봤어요. 너무 신기해서 다음날 당장 해당 사업을 처음 시작했다는 관련 협회를 수소문해서 찾아갔죠. 콩이 잘 자라면서도 재생에너지 생산으로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거다’ 싶어서 무릎을 탁 쳤죠.”

6월 24일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탑리의 한 양배추 밭에서 만난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장의 말이다. 약 1652㎡(약 500평) 되는 땅에 양배추들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었고 그 위로는 영농형 태양광 설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청주에서 나고 자란 김 협회장은 한평생을 농사만 지었다. 두 아들들도 가업을 이어 받아 토마토 케일 신선초 등을 키운다.

“조합장도 하고 농민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이었죠. 일본농민들을 보니까 농사를 지으면서 재생에너지를 팔아 연금처럼 꼬박꼬박 일정 금액을 수입으로 확보할 수 있더라고요. 일본처럼 우리 농민들에게 이른바 ‘햇빛 연금’을 만들어 주고 싶었죠.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이 농촌에 있으려고 하지 않잖아요. 고정적인 수입이 나오는 새로운 사업이 생긴다면 굳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날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농민 소득 증진과 농지 보전, 그리고 지속가능한 농업까지…. 여러 가지로 농촌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습니다.”

6월 24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탑리의 한 양배추 밭에서 만난 김창한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장. 한평생을 농사만 지은 그는 영농형 태양광의 본디 목표를 생각한다면 제도 설계가 어려울 게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 농사를 짓는 이가 혜택을 보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주장이다. 사진 이의종

젊은이 떠나는 농촌에 새로운 희망을

김 협회장은 2014년 본격적으로 영농형 태양광이 일본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안착할 수 있을지 백방으로 알아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비를 들여서 일일이 찾아보고 물어보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충북 청주 논과 밭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설치해 실증화 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좋은 의도와 달리 당시만 해도 ‘사기꾼이 아니냐’는 의심 섞인 눈초리에 시달리기도 했다.

“영농형 태양광을 일반 태양광사업과 동일하게 생각하면 큰일 납니다. 태양광 패널을 따라 흐르는 낙숫물이 농작물에게는 우박과도 같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시비량(작물 재배 시 최대 수량을 거둘 수 있는 비료 양)이나 햇빛을 조절하는 일 등 세세하게 배워야 할 사항들이 많아요.”

에너지전환포럼의 ‘영농형 태양광 글로벌 동향과 국내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영농형 태양광 발전사업은 세계적으로 20여년 전부터 그 가능성을 검증받아 온 사업이다. 유럽의 경우 이미 상당수 국가들이 자국에 적합한 형태로 영농형 태양광 발전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일본 역시 약 5000개 이상의 농가가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8년부터 국회에서도 관련 지원 법안들이 지속적으로 발의되고 있지만 여야 간의 의견 차이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좀 다른 분위기다. 22대 국회에서는 영농형 태양광 관련 법안 6건 이상 발의됐다. 각각의 법안에는 내용은 다르지만 △농지 소유 농민과 임차농 간 갈등 해소 방안 △고령의 농지 소유 농민의 상속 문제 해결 △영농형 태양광 수익으로 인한 직불금 등 여러 고민 지점들과 나름의 해결책들이 담겼다. 이재명정부 역시 농촌 인구 소멸과 농업소득 정체 위기의 해법으로 ‘햇빛연금’을 내세웠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리 없이 통과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시작도 안 했는데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농사를 짓는 이에게 혜택이 가게 한다는 근본적인 원칙만 잘 지킬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면 됩니다. 그 원칙만 고수하면 나머지 문제는 시간을 가지고 차츰 해결해 나가면 돼요. ‘무늬만 농민’이 아니라 실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땅을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 역할 아닙니까.”

인허가 등 원스톱 서비스와 교육 계획

땀의 가치를 믿는 김 협회장은 인터뷰 내내 흙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내비쳤다.

“농사는 기술로 짓는 게 아닙니다. 땅이 농사를 짓습니다. 영농형 태양광을 할 때 하부 작물은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게 여러 가지로 유리해요.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태양광 패널이 그늘을 만들면서 차광률이나 광질에 변화가 일어나고 온도가 떨어지는 등 농작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럴 때 유기농법으로 하면 상대적으로 잘 견딥니다. 유기농법으로 자란 농작물들에는 이미 자기 몸을 스스로 컨트롤하고 외부 스트레스로부터 견딜 수 있는 힘이 있거든요.”

실제로 화학비료나 농약에 의존하지 않고 자란 식물은 자체적인 면역력과 적응력이 강화한다. 또한 가뭄이나 온도변화 병충해 등 다양한 환경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성이 높아진다. 뿌리가 더 깊고 넓게 발달해 영양분 흡수 능력도 좋아진다. 물론 토양이 화학물질 없이 자연스럽게 회복되는 기간이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김 협회장의 주장이다.

“우리 협회는 농민만 회원이 될 수 있어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하는 일인데 당연한 원칙 아닐까요? 아직 초기 단계다 보니 회원 수도 적지만 이 원칙은 꼭 지켜 나갈 생각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많아요. 농민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인허가나 시공 등 여러 문제를 원스톱으로 서비스할 계획입니다. 농사와 영농형 태양광 사업을 병행하면서 알아야 할 실전 교육도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한국영농형태양광협회는 2018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법인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 협회가 내세우는 원칙은 3가지다. △농지 보전 △영농 지속 △농민 중심이다.

청주=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알기 쉬운 용어설명

■ 영농형 태양광 = 농지 위에 태양광 발전 시설물을 적절히 설치해 태양광 발전 시설 아래에도 작물이 자라는데 필요한 빛이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태양광 발전 시설물 상부에서는 1차로 햇빛의 약 30~40%를 받아 전기를 생산하고 하부에서는 햇빛의 60~70%가 도달해 농작물이 자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