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실용적 시장주의, 오해와 진실
이재명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책임지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모두의 대통령, 탈진영 실용주의, 실용적 시장주의’로 집약해 표현했다. 정략적 수사가 아닌 나름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정립한 정치철학이자 노선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진보 논객들 사이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 대통령의 시장주의 표방을 두고 ‘뜨악했다’는 반응도 있다. 시장주의는 본디 보수의 세계를 관통하는 시각이라는 게 주된 요인이었다. 과연 어떻게 봐야만 할까?
적지 않은 진보 논객들은 이 대통령의 언사와 행보를 두고 우클릭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좌클릭 우클릭이 좌우 이념 대결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하는 프레임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 대통령 자신은 좌우 이념 대결은 시대에 뒤처진 낡은 구도임을 분명히 했다. 그간의 진보 보수 사이의 진영 대결조차도 큰 의미가 없다고까지 했다. 이 대통령이 천명한 실용적 시장주의는 좌우 이념 대결 자체를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좌표임을 암시한다.
좌우 이념 대결 자체를 뛰어넘는 새로운 좌표
우리가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좌우 이념 대결의 근원은 친기업과 친노동 사이의 분열 대립이다. 우파는 친기업의 편에서, 좌파는 친노동의 편에서 자신의 이념을 정립하고 추구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진보 진영 안에서는 친기업 행보를 보수 우파의 편에 서는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친기업과 친노동 사이의 이념적 분열 대립이 여전히 유효한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세 가지 지점이 이에 대해 전혀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첫째, 한국 사회에 품고 있는 커다란 의문 부호 중 하나로 고용의 80%에 이르는 중소벤처기업 노동자들의 노조 활동에 대한 극단적 소극성이다. 현재 이들 세계의 노조 조직률은 2%에 불과하다. 못 만드는 걸까? 안 만드는 걸까? 민주화의 진척과 민주적 권리의식 향상에 비추어 보면 안 만드는 편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일치한다. 열악한 조건의 중소벤처기업에서 노조 활동으로 인해 노사 갈등이 격화되면 공멸로 치달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다. 경영 환경 개선 없이 노동 조건의 개선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인다. 어떤 식으로든지 노사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들 처지에서 친기업과 친노동의 분리 대립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프레임이다.
둘째, 주식 투자자 수가 1400만을 넘어섰다. 경제공동체인 가족 수까지를 고려하면 인구의 다수를 점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주식은 자본 지분을 의미한다. 주가는 자본의 이윤율에 연동되어 있다. 주식 투자자는 의식하든 하지 않든 포괄적 의미에서 자본의 이해에 자신을 일치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주식 투자자 수에 비추어 볼 때 노동자 계급의 상당수가 주식 투자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기업 정규직이 주축인 민주노총 조합원의 경우는 절대다수가 그에 해당할 수 있다. 좌파 운동의 본산을 자처하는 민주노총 구성원이 자본의 이해에 목을 걸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이런 현실에서 친기업과 친노동의 분리 대립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셋째, 4차산업혁명 시대의 가치 창출 주요 원천의 변화다. 복잡한 이론적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지만 간략히 언급하기로 하자. 4차산업혁명 시대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은 노동력에서 지식과 감성, 상상력으로 구성된 창조력으로 바뀌었다. 노동력은 생산수단이 아니나 창조력은 생산수단이다. 창조력을 보유하고 있으면 자본 유치를 포함해 생산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전통적 의미에서 노동자는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노동력을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이 법적으로는 노동자 지위에 있다 하더라도 새로운 생산수단을 체화하고 있다. 이들은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가 아니다. 자본과 노동을 지양한 전혀 새로운 계급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좌표, 실용적 시장주의일 수도
이 모든 사실은 좌우 이념 대결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새로운 시대의 좌표는 좌우 이념을 뛰어넘는 지점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실용적 시장주의도 강력한 후보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