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기술 패권 시대, 인도와 손잡을 때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우주산업 등 첨단 기술을 둘러싼 패권경쟁이 국가 간 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미국과 중국은 기술 우위를 유지하거나 확보하기 위해 공급망 재편, 인재 확보, 동맹국과의 기술 블록화 등 다층적인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이제 외교는 기술과 산업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고 각국의 생존전략은 기술력과 연결될 수밖에 없다.
한국도 이 흐름에서 예외일 수 없다. 국정기획위원회가 발표한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 보고서에는 산업 대도약 전략의 일환으로 ‘AI 3대 강국 도약’과 ‘미래전략산업 육성’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프라 투자와 데이터 공유를 포함한 글로벌 협력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AI 인재 확보를 위한 해외 유치 인센티브도 담고 있다. 국정 전략은 더 이상 ‘국내 역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현실 인식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기술패권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과 상호보완적 가치를 지닌 국가들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도가 눈에 띄는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 3위 스타트업 생태계, 디지털 혁신 허브
인도는 인구 세계 1위 국가이자 2024년 기준 세계 5위 경제 대국이다. 2025년 이후에도 인도가 6% 이상의 안정적 성장률을 이어가며 최소한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에서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를 자랑하며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벵갈루루(Bengaluru)는 글로벌 기술혁신의 허브로 자리잡았다. 생체인증 기반의 국민 신원확인 시스템(Aadhaar), 실시간 디지털 결제망(UPI), 전자정부 인프라는 디지털 공공혁신의 대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기술 생태계의 도약은 ‘저임금 제조기지’라는 인도에 대한 기존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한국의 대기업들도 인도의 정보기술·디지털·AI 인력과의 협업에 주목하고 있으며 한-인도 공동 연구개발(R&D), 스타트업 교류, 기술 현지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인도 출신 인재들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IBM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을 이끄는 현실은 인도가 더 이상 단순한 노동 공급처가 아니라 ‘글로벌 두뇌네트워크’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측면에서도 인도는 한국과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인도 청년층의 K-콘텐츠 열풍은 일시적 현상을 넘어 한국어 교육 수요 증가, 한국 유학 선호도 상승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도 요가, 아유르베다, 인도철학 등 인도 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양국 간 문화 이해와 정서적 공감대를 쌓을 기회도 많다. 특히 문화와 교육의 저변 확대는 향후 양국 간 기술·경제협력의 신뢰 기반이자 지속가능한 외교 자산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인도는 이제 비즈니스 분야에서 ‘기회의 시장’인 동시에 기술·인재 역량을 갖춘 ‘핵심기술 파트너’로 한국에 다가오고 있다. 제조·투자 중심의 기존 협력을 넘어 전략기술, 인재 교류, 창업 생태계, 기후대응, 지속가능성까지 협력의 지평을 넓혀야 할 때다. 한국과 인도의 파트너십은 상호 보완성을 바탕으로 ‘윈윈 모델’이 가능하며 이는 양국의 미래 전략자산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스타트업 및 AI 협력 플랫폼 구축이 시급하다. 공동 펀드 조성, 인도 진출 스타트업 육성, 기술 현지화 지원을 위한 구조화된 프로그램이 요구된다. 둘째, 디지털 공공인프라 분야에서 인도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고 공동 개발로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UPI나 Aadhaar 같은 시스템은 한국의 디지털 경험과 결합해 기술 고도화와 양국 공동이익을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협력의 새 지평을
셋째, 청년 세대를 연결하는 인적 기반 확대가 절실하다. 교환학생, 단기연수, 한국어 교사 파견, 인도인 영어 교사 허용, 청년 스타트업 교류 등 제도화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특히 서울시의 외국인 인재유치 종합계획 등 지방정부 정책과 연계해 인도 우수 인재들이 한국에서 학업과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도는 지금 세계가 주목하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 캐나다 G7 회의에서 한-인도 정상회담을 갖고 모디 총리와 핵심기술 협력과 인적교류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 미래지향적 관계의 토대가 마련된 지금 이재명정부가 인도와의 협력을 단지 외교 수사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정책으로 실현해 나가길 기대한다. 지금의 전략적 선택이 한국의 미래 성장을 가늠지을 분기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