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트럼프
“OBBBA법은 전략적 자해… ‘크고 아름다운 전기의 미래’ 중국에 넘겨”
“세계는 평평하다.” 퓰리처상을 세 차례 수상한 토머스 프리드먼의 말이다. 프리드먼은 세 차례에 걸친 세계화 과정을 통해 세계가 점점 평평해 졌다고 역설한다.
프리드먼은 20년 전 펴낸 자신의 역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서구 제국주의 세력이 주도한 세계화1.0과 ▲다국적기업들이 이끈 세계화2.0,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에 익숙해진 개인들이 선도하는 세계화3.0 등을 통해 세계인들은 모두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처럼” 가까워졌다고 주장했다. 제국주의 열강들이 식민지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대륙간 경계가 사라졌고, 다국적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면서 나라간 담장이 무너졌고, 글로벌 디지털망으로 연결된 개인들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세계가 평평해지면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파트너가 생기게 마련이다. 프리드먼은 앞의 책을 통해 “아쉽게도 새로운 위험이, 특히 미국인에게 나타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미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 두 가지는 과도한 보호주의와 과도한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다른 9.11테러에 대한 지나친 공포감으로 개인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 장벽을 치는 것과,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의 세계에서 치러야 할 경쟁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 말이다. 과도한 두려움은 또한 우리가 경제적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장벽을 쌓게 만들 수 도 있다. 둘 다 우리와 세계에 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프리드먼의 우려는 놀랄 만큼 적중하고 있다. 프리드먼이 꼭 집어 언급했던 “가장 큰 위험 두 가지”가 오늘날 미국에서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첫번째 위험은 ‘과도한 보호주의’ 정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America First)’ 기치 아래 관세 폭탄과 공급망 줄세우기,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주 22개국에 관세 서한을 발송했다. 한국과 일본, 태국, 필리핀, 이라크 등에 8월1일부터 적용되는 상호 관세 세율을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대부분 국가에는 25~30% 범위내 관세를 부과했고, 브라질에는 50%의 관세 폭탄을 던졌다.
두번째 위험은 ‘지나친 공포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장벽 강화와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법무부는 합법적 이민자들의 시민권까지 박탈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했거나 귀화 이후 중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한 경우 시민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 내 2,450여만명의 귀화 시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전하고 있는 ‘과도한 보호주의’와 ‘지나친 공포감’의 결정판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독립기념일인 4일을 택해 이 법안에 서명했다. OBBA법안을 미국독립의 이미지와 연결시키려는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OBBA는 ‘미국독립’보다는 ‘미국고립’으로 이끄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불법 이민자 차단 및 추방을 위한 국경 장벽과 구금시설 건설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적국의 탄도 미사일 등으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골든돔' 구축 비용 등 국방비도 늘렸다. 반면 메디케이드(취약계층 대상 공공 의료보조),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지원) 등 복지 예산은 줄였다.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구입시 적용해온 세액공제도 없앴다.
프리드먼이 다시 나섰다. 그는 지난 3일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의 OBBA는 어떻게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프리드먼은 “엄청난 전기를 필요로 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미국 대통령과 여당은 ‘전략적 자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법안을 통과시켰다”라면서 “미국을 조롱하는 14억 중국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라고 질타했다.
“이 법안으로 당신 집은 더 더워지고, 에어컨 요금은 더 올라가고, 깨끗한 일자리는 줄어들고, 미국 자동차 산업은 약화되고, 중국은 쾌재를 부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재임 중 미국이 글로벌 에너지 지배력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프리드먼은 그러나 OBBA법으로 인해 중국이 태양광과 풍력, 전기차, 자율주행차 시장을 사실상 주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2000년 중국의 전력 생산량은 1,300 TWh(테라와트시) 수준이었다. 미국은 그때 3,800 TWh 를 생산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은 1만 TWh를 돌파했다. 미국은 25년 동안 겨우 500 TWh증가에 그쳤다. 중국은 처음엔 석탄 발전에 의존했지만, 최근엔 수력과 태양광, 풍력, 배터리 중심으로 확장 중이다. 중국의 에너지원은 건설이 더 빠르고, 비용도 낮고, 기후에도 도움이 되는 청정에너지로 이동중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신규 추가 전력의 81%는 태양광과 저장용 배터리를 통해 생산했다. 하지만 이제 트럼프의 OBBA 법의 시행으로 이런 재생에너지 생산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얼마나 타격을 입을까? 미국의 에너지 전문 싱크탱크인 ‘에너지 이노베이션(Energy Innovation)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산업의 후퇴로 2035년까지 도매 전력 가격은 약 50% 오르게 된다. 2030년까지 소비자들이 부담해야 하는 에너지 비용은 연간 160억 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2030년까지 약 83만 개의 재생에너지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아예 창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프리드먼은 OBBA법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정치 세력은 미국 공화당과 중국 공산당 뿐이라면서 트럼프를 직격한다.
“중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바로 트럼프의 OBBA다. OBBA가 ‘크고 아름다운 전기’의 미래를 중국으로 넘기고 있다.”
“OBBBA는 완전히 미친 짓”
프리드먼 뿐이 아니다. OBBA를 우려하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혔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소셜미디어 ‘X’를 통해 OBBA를 직격했다.
“이번 법안은 미국 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파괴하고, 우리 국가에 막대한 전략적 피해를 입힐 것이다. 완전히 미친 짓이다. 파괴적인 짓이다. 과거 산업에는 보조금을 퍼주면서, 미래 산업은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석좌교수는 최근 스위스 공영방송(SRF)와의 인터뷰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심화를 걱정했다.
“터무니없다. 이 법안은 불평등과 사회 분열을 심화 시킬 것이다. 취약 계층의 의료 접근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미 부유층과 빈곤층 간 건강 격차는 매우 크다. 이 법안은 그런 격차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에너지 공공정책 전문기관인 아틀라스 퍼블릭 폴리시(Atlas Public Policy)의 설립자인 닉 니그로는 미국 에너지 산업의 퇴보를 우려했다.
“에너지 산업의 거시적 전망을 보면, 이번 법안으로 인해 미국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청정에너지 산업에서 후퇴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그 주도권을 잃는 전환점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프리드먼은 서두에 언급한 책에서 “미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썼다. 디지털 기술의 보편화와 공급망의 세계화로 후발국들이 미국과 경쟁하는 상황까지 왔다는 관찰이었다. 중국은 실제로 군사와 경제와 기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위기를 일방적이고 폭압적인 방식으로 풀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무역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관세폭탄을 안기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 기존 무역협정을 일방적으로 깨고, 유엔이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마저 무시하고 있다.
한국도 방위비 증액과 관세협상 압박
당장 우리나라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관세협상 압박을 한꺼번에 가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1년에 100억달러(약 13조7000억원)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존 주한미군 분담금의 10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눈엔 한국이 그저 “머니 머신” 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은 주한미군을 위해 세계 최고의 기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는 동맹국이다.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상대인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과 직접 마주치는 인도-태평양 전략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나라다.
한미간 우호와 신뢰는 한국 뿐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도 매우 중요한 안보자산이다. 행여 두나라간 조금이라도 거리가 생긴다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중국이 가장 반길 것이다. 그럴 때 과연 “중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트럼프”라는 조롱을 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