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 복귀 선언에 정부-대학 고심
정부 차원 학사 유연화 등 논의 불가피 … 환자·시민단체 ‘특혜성 조치 반대’
의과대학 학생들이 의·정 갈등 17개월 만에 복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대학마다 학생들의 복귀 상황, 학사규칙 등이 달라 정부·대학이 해법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다.
특히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이들에 대한 특혜성 조치를 반대하고 나서 새로운 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5일 교육부는 의대생들 복귀 방안과 관련해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연간 30주 이상의 의무수업 일수를 채워야 하는 예과생들의 복귀 마지노선이 이달 21일로 예정돼 그 전에 후속조치를 위한 정부 입장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의대생들은 지난해 2월 정부가 의대 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조정하는 의료개혁안을 발표한 이후 수업 거부를 이어왔다. 앞서 교육부는 3월까지 학생들이 복귀할 경우 의대 모집인원을 3058명으로 조정하겠다고 타협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복귀율은 1/4에 그쳤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40개 의대 1학기 의대 재적생 2만3670명 중 유급 대상자는 1만7명이다.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대협 비대위) 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국회 김영호 교육위원장, 박주민 보건복지위원장,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전원 복귀를 선언했다.
의대협 비대위는 방학이나 계절학기 등을 활용해 학사 유연화 없이도 교육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의 요구대로 예과생들이 연간 30주 이상 연달아 수업을 들을 수 있으나, 본과생들의 경우 일정상 연 40주 이상의 의무수업 일수를 채울 수조차 없다는 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다. 또 교양 과목이 학기 단위로 굴러가는 예과와 달리 본과는 실습이 1년 단위로 진행돼 중도에 복귀하기 어렵다는 것도 장애물이다.
특히 유급·제적 처리된 학생들에 대한 조치를 번복할 경우 타과 학생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육계 안팎에서는 결국 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제적·유급 상황과 학칙이 제각각인 대학들 차원서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원칙론을 고수하던 교육부는 이재명정부 첫 장관이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원론적인 답변만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교육부 내부에서는 미묘한 입장 변화도 감지된다.
차영아 교육부 부대변인은 14일 교육부 정례브리핑에서 의대 학사 일정 유연화 여부를 묻는 질문에 “종합적 검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딱 잘라서 한다, 안 한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하고 있고 대학마다 학칙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유급·제적에 대한 것도 대학과 깊은 논의를 거쳐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6일 청문회를 앞둔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국회 교육위원회 ‘인사청문회 서면질의답변서’를 통해 “대학별 학사 운영 및 교육여건 등을 고려해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필요한 부분은 정부가 지원하고, 현장소통 및 의견 수렴 등을 통해 학생들이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의대생들의 복귀와 관련해 정부가 학사 유연화 등 특혜성 조치를 해서는 안된다며, 집단행동을 막을 대책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백혈병환우회를 포함한 10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는 복귀한 전공의와 의대생에게 특혜성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며 “자발적으로 환자를 위해 복귀한 것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다 정부의 특혜성 조치에 기대 돌아온 이들이 오히려 더 우대받는다면 이는 정의와 상식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입장문을 내고 “복귀 조건으로 의료계가 학사일정 유연화나 전공의 수련시간 단축을 요구하고, 정부가 이를 수용한다면 환자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 부적절한 집단행동을 정당화하는 셈”이라며 “버티면 이긴다는 의료계의 잘못된 인식을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