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탈취 근절…한국형 디스커버리 입법 현실화

2025-07-16 13:00:00 게재

전문가 사실조사와 법정증언 녹취 중심 구성

여야 큰 이견 없어 … 개정안 대표발의 이어져

일부 영업비밀 유출·소송남용 등 우려 여전해

기술탈취 근절을 위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K-디스커버리) 도입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이 속도를 내고 있다.

야당들도 크게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스타트업과 벤처기업계는 도입에 적극 찬성이다. 변호사협회 등 전문가들도 강력 요구하고 있다. 올해 안에 디스커버리 도입 가능성을 예상하는 근거다.

한국형 증거조사제도는 ‘전문가 사실조사’가 핵심이다.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직접 기술탈취 의심 현장을 조사하고 자료를 수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제도’를 한국에 맞게 변형해 K-디스커버리로 불린다.

스타트업이나 중소벤처기업계에서는 10여년 전부터 K-디스커버리 도입을 요구해 왔다. 증거확보 부족으로 기술침해 소송의 승소율과 손해배상액이 현저히 낮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진행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침해 민사소송의 피해기업 승소율은 32.9%에 그쳤다. 주장한 손해액 대비 실제 인정되는 손해액 비율도 17.5%에 불과했다.

이는 국내 기술탈취나 유출의 입증책임이 피해기업에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 침해자의 자료거부로 기술침해 증거수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송은 피해자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셈이다. 한국형 증거조사제도는 이런 불공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증거확보 불공정 문제 해결 = K-디스커버리는 21대 국회에서 논의하다 폐기된 바 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도 적극적이지 않아 중소벤처기업계의 비난을 받았다.

이번 국회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불씨를 살렸다. 대선후보 당시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기술탈취 근절 공약으로 내걸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당은 하도급법 특허법 등 총 6개 분야 법을 묶어 ‘한국형 디스커버리제도’ 법으로 이름 짓고 입법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독일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와 미국의 법정증언 녹취 제도를 섞을 예정이다.

지난 9일 재단법인 경청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국형 증거수집제도 입법 토론회에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술침해 소송의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고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세울 수 있도록 입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는 디스커버리 도입을 위한 다수의 개정법률안이 발의돼 있다.

주요내용은 △전문가 사실조사 △법정 외 진술녹취 △자료보전명령 등이다. 전문가 사실조사는 법관이 지정한 전문가가 침해현장에서 자료를 수집·조사해 그 결과를 증거로 사용한다.

법정 외 진술녹취는 소송의 쟁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법원이 아닌 장소에서 법원 직원이 소송 당사자가 필요한 자를 대상으로 진술을 녹취할 수 있는 내용이다. 자료보전명령은 증거의 멸실이나 훼손, 사용방해를 방지하려 법원이 침해자에게 증거자료를 보전토록 지시하는 것이다.

◆해외 소송급증 사례 없어 = 여전히 일부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영업비밀 유출 △소송비용 증가 △소송남용 등이 대표적이다.

영업비밀 유출은 소송 수행을 위해 불가피하게 제출한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걱정이다.

전문가들은 △열람할 자 제한 △열람자 비밀유지 의무 등 안정장치 필요성을 제기한다.

소송비용의 경우 전문가 사실조사, 법정 외 진술녹취, 자료보전명령 제도로 인해 변호사 선임비용 등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많은 증거로 제시된다면 소송개시 전 화해나 취하로 결정될 수도 있다. 실제 디스커버리 제도를 시행 중인 미국은 93% 이상이 본안 소송 전에 화해나 취하로 종결되고 있다.

소송남용 우려는 외국 특허권자가 국내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제기 증가 가능성에 근거하고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전문가 사실조사를 먼저 도입한 독일과 일본에서 외국기업 소송이 급증했다는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기술피해기업 무료법률지원을 하는 경청의 장태관 이사장은 “디스커버리 도입은 거의 여야가 이견이 없는 것 같다”면서 “여전히 일부에서 제기하는 몇가지 우려에 대해 보완만 하면 올해 안 입법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해 한국지식재산연구원의 ‘국내 특허소송 특성 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최근 3년(2021~2024년) 평균 침해인용률은 26.1%에 그쳤다. 3년간 선고된 특허침해 민사판결(손해배상, 침해금지 본안·가처분 포함) 244건을 분석한 결과다.

특허침해주장이 기각된 경우 침해부정 근거로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음”이 105건으로 59%를 차지했다. 손해배상 평균 청구액은 약 5억4000만원, 평균 인용액은 약 2억5000만원, 평균 손해배상액 인용률은 34.9%였다. 특히 증거가 부족해 손해액을 법원이 재량 산정한 비율은 84.9%에 달했다.

김형수 기자 hs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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