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액상전자담배 규제 미룬 사이 신종마약 10대로 번져

2025-07-17 13:00:08 게재

‘담배’ 아니라 접근 쉬워 마약조직서 악용

청소년에게 압수한 합성대마 중 78% 차지

#.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단지 주변을 순찰하던 서울경찰청 소속 기동순찰대원들이 아파트 놀이터에서 “누가 쫓아온다. 친구가 마약을 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 중학생 2명을 발견했다.

이들을 붙잡은 경찰관들은 학생들의 마약 투약을 의심했다. 놀이터 근처에서는 이들이 버린 전자담배 카트리지도 발견됐다. 감정 결과 카트리지 안에 있던 액체는 신종마약 일종인 합성대마였다.

경찰은 이들이 액체 합성대마를 합성니코틴을 이용하는 액상형 전자담배(액상전자담배) 기기에 넣어 흡입한 것으로 추정한다.

최근 청소년들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액상전자담배로 위장한 신종마약이 확산 중이다.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한 청소년 마약범죄가 새로운 양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 접근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규제 법안들을 수년째 외면하는 국회를 향한 비판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최근 발간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압수 마약 중에서 신종마약이 차지하는 비율은 34.9%에 달했다. 이는 2019년 9.7%와 비교해 3.6배나 증가한 것이다. 특히 합성대마는 2.6%에서 15.2%로 5.8배나 급증했다.

수사기관 등은 아편, 코카인, 헤로인, 모르핀, 메스암페타민(필로폰), 대마(마리화나) 등을 통상 전통마약으로 분류한다. 반면 합성대마, 신종 케타민, 펜타닐 등 법적 규제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화학구조를 바꿔 합성한 것들은 신종마약으로 부른다.

전자담배를 이용해 합성대마로 대표되는 신종마약을 유통한 사례도 늘었다. 지난해 합성대마 압수 건수 5650건 중 액상전자담배(카트리지 충전용 액상 포함)가 3868건(68.4%)이나 됐다. 2022년의 경우 액상전자담배 비율이 61.0%였다.

최근에는 10대 청소년 사이에서도 합성대마가 번지고 있다. 허술한 법체계로 인해 청소년들의 액상전자담배 접근이 쉬워 마약조직이 이를 새로운 유통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10대에게 압수한 합성대마 176건 가운데 138건(78.4%)이 전자담배를 이용하고 있었다.

국과수는 “액상전자담배 구매가 쉬워지면서 합성대마 시장이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엔 담배처럼 흡입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은 속칭 ‘브액’이라 불리는 액상전자담배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대마보다 환각성 40배 이상 높아 = 문제는 합성대마가 인체, 특히 청소년들에게 보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마는 다 자란 대마초 꽃잎을 건조해 사용한다. 반면 합성대마는 대마초에서 환각물질인 테트라히드로칸나비놀(THC) 성분만 추출해 농축하거나 다른 화학성분과 합성해 만든다. 합성대마의 THC 농도는 일반 대마와 비교하면 3~20배 높고, 환각성도 최대 40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액상대마는 환각, 불안, 공황, 경련 등 중추신경계 이상 반응이 더 강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며 심장마비나 신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액상전자담배 등을 활용해 흡연할 수도 있고, 대마 특유의 냄새도 적어 교사나 학부모의 눈을 피하기도 쉽다.

국과수는 “외형이 액상전자담배와 유사해 청소년의 호기심과 일상적 흡연 습관 속에서 남용이 이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특히 습관적·무자각적 사용으로 이어지기 쉬운 만큼 중독 위험도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남용 연령이 낮아질수록 독성 발현 시점도 그만큼 빨라진다”며 “조기 예방과 세대 맞춤형 개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정원, 전자담배형 신종합성마약 국내 대량반입 시도 적발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TCIC)는 신종마약 에토미데이트를 국내에 대량 밀반입하려 한 싱가포르인 국제마약조직 총책 등 일당 4명을 지난달 19일 말레이시아 마약범죄수사부(NCID)와 공조로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 8일 발표했다. 국정원과 현지 수사당국은 검거 과정에서 합성마약 카트리지 4958개(9.42L)와 전자담배 포장용 종이박스 3000여개를 압수했다. 사진은 압수한 합성마약 카트리지. 사진 국가정보원 제공

◆일반 전자담배로 속여 청소년에 유통 = 합성대마를 액상전자담배로 속여 10대에게 유통·흡입시키는 범죄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3년 합성대마 유통 총책 A씨 등 4명이 경찰에 적발됐다. 동네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용인시 소재 한 오피스텔에서 지인들을 대상으로 합성대마를 유통했다.

이들은 대마 유통계획을 세우고 총책과 모집책 등으로 역할을 나눠 활동했다. 이들이 작성한 유통계획서에는 △모든 유통은 텔레그램으로 한다 △마약류 복용자 혹은 복용할 것으로 판단되는 자를 대상으로 한다 △지인들을 필히 손님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하고 술자리를 만들어 권유하거나 담배와 비슷하게 만들어 복용을 유도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로부터 합성대마를 구매한 18명 중 9명이 미성년자였다. 이중 고등학생 4명은 이들이 건넨 합성대마를 액상전자담배인 줄 알고 피웠거나 강압에 못 이겨 흡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시장 노리는 국제마약상 등장 = 사정이 이쯤 되자 액상전자담배를 이용한 신종마약을 한국에 판매하려는 국제마약조직도 나타나고 있다.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TCIC)는 신종마약 에토미데이트를 국내에 대량 밀반입하려 한 싱가포르인 국제마약조직 총책 등 일당 4명을 지난달 19일 말레이시아 마약범죄수사부(NCID)와 공조로 현지에서 검거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일당은 말레이시아 등에서 환각효과와 중독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에토미데이트와 코카인을 혼합, 액상전자담배에 주입한 제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매달 2만개(200만명 동시 투약분)씩 우리나라로 밀반입·유통할 계획을 세웠다.

국정원과 현지 수사당국은 검거 과정에서 합성마약 카트리지 4958개(9.42L)와 전자담배 포장용 종이박스 3000여개를 압수했다. 이는 50만명이 투약할 수 있는 분량으로 시가로 따지만 23억원에 이른다.

에토미데이트는 지난 2023년 일명 ‘롤스로이스남’ 사건 피의자가 투약한 것으로 알려진 성분이다. 국내에서는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신마취제로 분류돼 마약류로 지정돼 있지 않다. 특히 불법으로 합성된 에토미데이트 신종마약은 성분과 함량이 불분명해 자칫 사망 등 인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정원은 국제마약조직의 국내 진출 움직임을 추적하던 중 지난 2023년부터 한국을 자주 드나든 B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포착했다.

국정원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신종마약을 국내에 대량 밀반입하려던 국제 마약카르텔을 해외에서 선제적으로 무력화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OECD 회원국 중 3개국만 규제 사각지대 = 전문가들은 신종마약에 노출되는 청소년이 늘어난 주요한 이유로 액상전자담배가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꼽는다. 이들은 특히 액상전자담배의 신종마약 유통 통로로써 위협 외에 합성니코틴 자체의 유해성에도 주목한다.

현행 담배사업법이 합성니코틴을 ‘담배’의 정의에 포함하지 않고 있어 액상전자담배는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로 인해 경고 그림·문구 표기, 광고·온라인 판매 제한 등 기존 담배 제품에 적용되는 규제를 피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청소년 액상전자담배 사용률은 2020년 1.9%에서 지난해 3.1%로 증가했다.

이런 사정으로 국회에는 액상전자담배를 ‘법률상 담배’에 포함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10여건이나 발의돼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부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원회에서 3차례 논의됐지만 아직 상임위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합성니코틴 원료 수입업자의 반대에 일부 의원들이 “소상공인인 판매업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추가 논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서인 기획재정부도 개정안에 찬성하지만 국회는 관련 법안 처리를 미루고 있다.

이에 대해 청소년·시민단체들은 “판매업자 생존권이 국민 건강보다 먼저냐”고 반발한다. 실제 액상전자담배의 유해성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는 합성니코틴 원액에 발암·생식독성 등 유해물질이 상당량 존재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용역보고서를 내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과 일본 콜롬비아를 제외한 35개국이 액상전자담배를 담배에 준해 규제한다.

청소년시민단체들은 국회가 의견수렴을 이유로 개정안 처리를 장기간 공전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도 합성니코틴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일부 국회의원의 반대 등으로 장기간 계류하다가 자동 폐기된 바 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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