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많은 상장사, 처리 방안 마련에 분주

2025-07-18 13:00:29 게재

소각 의무 상법 개정 추진에 직접 처분 증가

교환사채 등 꼼수 처분·상장폐지 사례 나와

범 여권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상법 개정안을 잇달아 발의하면서 자사주 보유량이 많은 상장사들이 처리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작년과 올해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사례가 증가하는 한편 계열사나 우호 주주들에 자사주를 넘기는 꼼수 처분 또는 상장폐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자사주 취득 6개월·1년·3년 내 소각 의무화 법안 발의 잇달아 =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에만 자사주 소각 의무화 내용을 담은 세 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은 자사주 취득 후 1년 내 소각 의무화를 담았고,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를 3년 이내 소각하고 운용 내역을 공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가장 강력한 내용은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안으로, 자사주를 6개월 이내 소각하도록 했다.

작년 말 한국거래소는 자기주식 보고서 공시를 의무화했다. 이 제도는 상장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규모가 전체 발행 주식의 5% 이상인 경우, 자사주 보유 현황과 보유 목적, 추가 취득 및 처분 계획 등을 사업보고서의 첨부서류 형태로 공시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기업들이 보유한 자기 주식을 보다 투명하게 관리하고, 자사주가 경영권 방어 등 특정 목적을 위해 불투명하게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특히, 자사주 처분 시 처분 목적과 대상자 선정 사유, 예상되는 주식 가치 희석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하여 시장의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이 기업가치 제고와 주가 부양에 실질적인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인다. 동시에 주가수익비율(PER)을 낮추며 자기자본이익률(ROE) 상승을 유도, 증시 저평가 해소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종영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자기주식 소각 관련 법안은 다음 달 여당 내부 의겸 수렴을 거쳐 확정된 후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상장사의 자사주 활용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올 상반기 자사주 대량 처분 급증 =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사주 비중이 10%가 넘는 상장사는 229개에 이른다. 자사주 비중이 40%가 넘는 기업도 7개에 이른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발의되면서 이들 기업은 자사주를 대량 처분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이에 따라 올 상반기 자사주 소각이나 매각 등 대량 처분이 급증하고 있다.

먼저 올 상반기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소각 금액은 15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1년간의 소각금액 13조9000억원을 이미 뛰어넘었다. 2023년 4조8000억원 보다는 3.2배에 달한다.

주가 상승효과도 나타났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종목 중 자사주 비중이 5% 이상이면서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5 미만인 기업들의 3개월 수익률은 23.9%로 코스피 17.4% 대비 6.5%p 높았다. 2020년 3월 이후 자사주 소각을 한 기업들의 경우 시장 대비 평균 3%p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실제 최근 자사주 매입, 소각에 적극적인 금융, 증권주들의 주가는 큰 폭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반면 소각 대신 자사주 처분에 나서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다.

올들어 자사주를 이용한 교환사채(EB) 발행을 결정한 기업은 17곳에 달한다. 특히 대선 기간 자사주 소각 의무화 공약이 힘을 받기 시작한 4월 이후 13곳이 EB발행을 결정했다.

계열사 등에 자사주를 매각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올해 들어 시장에 자사주를 직접 처분한 기업은 20개 기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5개 기업에서 5곳 늘어났다. 상법 개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지난 5월 이후 자기주식처분결정을 공시한 곳은 총 91곳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9곳에서 30% 이상 늘었다. 올해 5월부터 7월 11일까지 2개월여간 이들 기업의 자사주 처분 결정 금액은 2조원에 육박한다.

환인제약은 지난 7일 자사주 100만주를 케이프투자증권 등 국내 기관투자에게 122억원에 처분했다. 지엔씨에너지도 지난 4일 NH투자증권과 이외 국내 투자자들에 자사주 50만주를 넘겨 163억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했다.

자사주를 계열사나 특수관계인에게 넘기는 ‘셀프 거래’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솔본은 지난 2일 계열사 테크하임에 자사주 168만주를 장외 처분해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율을 57.88%까지 끌어올렸다.

같은 날 진양제약은 자사주 32만주를 최대주주인 최재준 사장의 부친이자 창업주인 최윤환 회장에게 매각했다. 롯데지주도 지난달 26일 롯데물산에 자사주 1477억원어치를 넘겼다.

◆자진 상장폐지 증가 = 이런 가운데 자진 상장폐지 기업들도 잇따르고 있다. 올들어 자진 상폐를 위한 공개매수를 진행했거나 진행 중인 기업은 신성통상, 비올, 텔코웨어, 한솔PNS 등 4곳이다. 상장사들이 자진 상폐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는 상법 개정 등 제도 변화가 있다는 것이 업계의 해석이다. 개정 상법 시행 후 이사의 책임을 묻는 소송, 외부 자본으로부터의 경영권 공격, 소액주주 관여활동 등이 증가할 수 있는 만큼 규제 강화 전 서둘러 상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이들 기업이 “자사주 공시 의무 강화와 향후 소각 의무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 대응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특히 텔코웨어는 자사주 비율이 44.1%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자사주를 전량 소각하게 될 경우, 지배주주 지분율은 안정적인 경영권을 유지하기에 다소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점차 주주 연대가 힘을 얻고, 행동주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상장기업으로서 행동주의 타겟이 되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공개매수를 통한 자진 상장폐지를 선택한 것으로 시장은 평가하고 있다.

한편 기업들이 자사주 활용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 행동주의 펀드는 주주환원 압박 강화에 나서고 있다.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은 최근 나이스정보통신에 보낸 주주서한에서 “PBR이 0.8배 이하로 하락하면 자사주를 자동으로 매입·소각하는 ‘바이백&캔슬’ 정책을 도입하라”고 요구했다.

밸류파트너스는 “자사주의 매입과 소각이 어떤 신규 사업보다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가치 창출 수단”이라며 “발행주식의 절반을 소각하면 주당 영업이익이 두 배가 되고 한국 시장에선 자사주 소각 시 별도 과세가 없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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