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평 국회의원실의 그림자들 ① 다시 부상한 갑을관계
의원-보좌진의 기형적 관계…“계엄땐 방패막, 평시엔 소모품”
국회 안팎 막강 의원, 언제나 임면 가능한 임시직 관계
동지·파트너 원하는 보좌진, 현실은 “사적 업무까지”
“피해자 중심 아닌 의원 중심 문제 접근”에 자괴감만
“모난 돌이 정 맞아, 바람 부는 대로 살길” 푸념 가득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오랫동안 수면 밑에 침전돼 있었던 ‘보좌진 갑질 논란’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인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게 만들었다.
의원을 포함해 10명이 지지고 볶는 국회의원 사무실은 45평이다. 그 곳엔 4년 가동기간이 정해진 선출직 고용인과 그의 특수 피고용인 9명이 ‘입법공무원’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모여 있다.
의원은 국민들이 뽑고 4년간의 임기가 보장된다. 의원은 8명의 보좌진과 1명의 인턴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고 임금은 정부가 댄다. 보좌진의 임금 부담 없이 의원은 9명을 언제든 뽑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다. 면직예고제는 30일 전에 미리 해고를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대체로 해고가 아닌 스스로 그만두도록 강요당하는 사례가 많아 면직예고제는 유명무실하다.
별정직인 보좌진들은 국회 사무처 사무총장과 고용계약을 맺는다. 실제 계약과 고용구조가 이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국회의원은 의원실 바깥에서도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공공기관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민간 곳곳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의원실로 이동하는 전직에 직접 간섭하기도 한다.
무소불위의 국회의원과 어떠한 노동 여건 보장도 요구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인 보좌진의 관계는 ‘갑을 관계’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갑을관계는 어떠한 경계도 없어 결국 각종 ‘불공정’ ‘불의’가 싹틀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불거진 ‘국회의원 갑질 논란’은 공개적으로는 말도 못하고 간간이 ‘익명 게시판’에 메아리 없는 불만만 내놓던 보좌진들의 입을 트게 만들었다.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갑을 문제를 정면에서 다뤄온 더불어민주당에서 나온 논쟁은 의원실 안이 얼마나 곪아있는지 보여주는 대목들로 빼곡하다.
의원-보좌진의 갑을 문제는 너무 오래돼 이젠 ‘당연시’ 될 정도로 굳어진 관행이 됐고 많은 의원실에서 보좌진이 의원의 사적 업무를 처리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다는 얘기는 여전히 의원회관 복도통신을 넘어 국회 본관까지 넘어가 있는 상태다.
◆“의원은 동지가 아니었다” = 민주당 보좌진협의회 역대 회장단은 “국회의원에게 보좌진은 단순한 직원이 아니다”라며 “입법 정책 예산 홍보 선거 회계 민원을 비롯한 의정활동 전반을 보좌하는 파트너이자 국민과 국회를 잇는 다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보좌진의 인격을 무시한 강(선우) 후보자의 갑질 행위는 국회의원으로서의 기본적 자세조차 결여된 것”이라고 했다.
보좌진의 기대와 현실은 간격이 너무 컸다. 보좌진 등의 익명게시판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 A씨는 “대부분 의원들은 의정활동의 범위를 착각하며 살아 간다”며 “수행비서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의원 배우자와 자녀들을 케어하고 주말엔 의원과 함께 골프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는 “의원 집안 경조사에 보좌진이 동원되어 때로는 혼주측이, 때로는 상주 측이 돼 실무를 맡기도 한다”며 “가족 휴가지 예약과 교통편 준비는 이제 사적 업무 영역으로 취급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고는 “정책과 행정업무는 물론 의원의 사생활까지 무한 책임져야 하는 이 기형적인 현실”과 ‘국회의원의 입법활동을 지원하는 보좌직원을 둔다’는 업무범위를 지적하며 “이 모호한 조항 아래서 보좌진은 소모품으로 전락하기 일쑤”라고 했다.
국회의원이 수석보좌관에게 궂은일을 맡기는 ‘하청-재하청’ 관행도 고발됐다. B씨는 “퇴근 후 주말에 일을 시키는 건 기본세트”라며 “하루는 너 댓 명이 한 번에 사라졌다. 예고도 없이, 이유도 없이 ‘전원 사표 받으라 하십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됐다. 그 시스템의 관리자, 늘 곁에서 고객 끄덕이던 수석보좌관”이라고 했다. C씨는 “계엄 막고 집회 동원할 때는 ‘우리의 보좌관’, 대의원 표 구걸할 땐 ‘국회의 주인’”이라고 하던 국회의원들이 다 끝나면 ‘누구세요’라며 외면하는 현실을 꼬집기도 했다.
◆“참아야 했다” = 하지만 보좌진은 참아야 했다. 잃을 게 너무 많았다. ‘참을 인’자를 그리며 버티는 전형적인 ‘을’의 모습이다. 앞의 A씨는 “지금도 무섭다”며 “누군가를 탓하면 해코지당하지 않을까, 한 마디 했다고 소문이 돌지 않을까, 다시 일할 기회마저 막히지는 않을까.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견디고 있다”고 했다. “(의원) 한 사람의 입김으로 면접이 갑자기 취소되고 연락이 끊기고 공적인 자리에서 ‘뽑지 말라’는 말이 사적이 대화처럼 오가는 현실, 그게 평판조회라는 말로 포장될 때 권력은 너무 쉽게 폭력이 된다”고 했다.
D씨는 “이렇게 될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생계를 위해 아무 말도 남길 수도, 어느 언론과도 인터뷰할 수 없다”며 “한번 낙인찍히면 다시 여기서 일할 수 없을 것이기에”라고 했다. 그는 “다시 반복될 이 사태를 바라보며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올 그 시련과 괴롭힘이 무서울 뿐”이라고 했다.
◆커지는 자괴감 = 보좌진들은 이번 사태도 과거와 같이 시끄럽다가 끝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B씨는 기대를 내려놓은 듯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사시길 바란다”며 “때로는 불의 앞에서 눈을 감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않는 보좌진이 되자”고 했다. E씨는 “당의 직장 내 갑질에 대한 대처는 일관되다”며 “의원이 껴 있는 경우 피해자 중심이 아닌 의원 중심으로 처리한다”고 했다. “보좌진 사이에 오래 전부터 유명했던 일인데 당이 이렇게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역시나”라고도 했다.
C씨는 “이제 모든 보좌진들은 부조리한 상황은 그냥 견뎌야 하고 진실에는 침묵을 강요당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혹시 바뀌지 않을까’ 기대도 감추지 않고 있다. F씨는 “지난 12.3 불법계엄을 함께 막아낸 동지들, 함께 고생하고 함께 대선 승리까지 이끈 동료들 아닌가”라며 “이럴 때면 ‘그래도 되는’ 부품 취급은 않았으면 한다. 심하게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G씨는 “갑질논란으로 끝내 낙마하고 의원들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이나마 경계심과 부채의식에 휩싸이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