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인구·기술 삼중전환시대
바이오헬스산업, 삼중전환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폭염·홍수, 만성질환 급증 등으로 기존 의료·사회안전망 재설계 필요 … 디지털 혁신·고령화·기후 위기 융합대응
우리 사회는 기후 위기, 인구구조 변화, 디지털 기술혁신이라는 이른바 삼중전환시대를 관통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은 단순 산업환경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사회시스템의 원리 자체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흐름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바이오헬스산업 역시 이러한 복합전환 속에 있다. 기후위기와 감염병의 일상화는 보건의료의 지속가능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동시에 시험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은 의료·돌봄 수요의 급증과 의료비 부담의 증가라는 이중 압력 속에서 예측 가능한 기술·정책 기반이 요구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혁신의 가속화는 정밀의료, 원격의료, AI기반 진단·치료 등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을 실현 가능한 산업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바이오헬스산업에 있어 거대한 도전이자 기회로 간주된다. 바이오헬스는 단순 경제산업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과 사회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기반산업이다. 나아가 데이터, 기술, 생명과학이 결합하는 융복합 생태계를 통해 미래산업을 선도하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관련해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삼중전환시대, 바이오헬스산업의 도전과 기회’ 연구보고서에 담은 전문가들의 현황 분석과 바이오헬스산업 발전 방안을 공유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디지털 기술혁신, 인구 고령화 가속, 기후 위기 심화라는 전례없는 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은 산업의 경계를 허물고 디지털화 속도를 더하고 있다.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구조의 불균형은 사회전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기후변화는 생명체로서 인간의 생존 기반은 물론 건강과 질병의 양상까지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29일 차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이러한 삼중전환 속에서 바이오헬스산업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한 핵심산업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 병원계, 산업계, 연구기관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통합적인 전략과 거버넌스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바이오헬스산업 삼중전환 한 가운데 서 있어 = 이행신 보산진 산업진흥본부장은 “기술, 인구, 환경 삼중전환은 서로 맞물려 작용하며 산업과 경제, 인간의 건강과 삶의 방식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특히 바이오헬스산업은 삼중전환의 중심에서 구조적 재편을 요구받고 있다”고 밝혔다.
포브스는 트윌리오(Twilio) 조사결과를 인용해, 전 세계기업의 97%가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디지털전환을 가속화했다고 보도했다. 국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기준 기업의 32.1%가 디지털전환 추진단계(계획, 구축)에 있다고 밝힌바 있다.
유엔의 인구 통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세계인구는 약 82억6000만명이며 2030년 중반에는 80세 이상 인구가 1세 이하 영유아 수를 넘어 2억6500만명, 2070년대 후반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22억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 역시 2024년 전체 인구 중 노인이 20%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노령층 비율이 2050년 40.1%, 2072년 47.7%에 이를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이러한 인구 증가는 의료, 연금, 사회보장 시스템에 압박을 가하고 노동력에 중대한 부담을 줄 것이다.
기후 위기도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2025년에서 2029년까지 매년 평균 지표면 온도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1.2℃~+1.9℃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또한 2024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전년대비 0.9%(135Mt CO₂)를 증가했다.
◆디지털 전환, 환자 맞춤 의료 이끌어 =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바이오헬스산업의 전반의 패러다임을 재정의하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헬스케어 시장 규모는 2023년 2408억5000만달러로 평가된다. 2024년에서 2033년까지 연평균 21.11%의 성장률로 약 1조6351억1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팬데믹 이후 디지털헬스케어 분야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소비자, 의료전문가, 의료서비스 제공자와 업계를 위한 4대 목표로 △협력 및 지식 이전 △디지털 전략 이행 △디지털헬스 거버넌스 △사람중심의 보건시스템을 제시했다. 이는 단순 기술 도입을 넘어 제도, 문화, 사회적 수용이 융합된 생태계 전환을 의미한다.
디지털 전환은 의료, 제약, 의료기기 산업 전반에 걸쳐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기술을 활용해 진단, 치료, 예방, 환자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의료분야에서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한 진단 정확도 향상과 원격의료 서비스 확대가 두드러진다. 제약분야에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신약개발과 디지털치료제기기 도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의료기기분야에서는 웨어러블 디바이스와 스마트 재활 솔루션이 주목받고 있다.
환자 중심의 맞춤형 의료서비스 제공과 효율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기술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변화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고령화로 예방과 돌봄 중심 전환 가속 =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의료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함을 강제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2023년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1인당 연간 의료비는 전체 평균의 3배에 이른다. 의료비의 40% 이상이 고령층에서 발생하고 있다. 만성질환이 동반된 복합질환 환자가 증가하고 있다. 예방-관리-돌봄까지 통합된 서비스가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바이오헬스산업은 단순 치료를 넘어 건강 유지·예방 중심의 생애주기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 있다. 만성질환관리, 돌봄서비스 강화, 지역사회 기반의 건강관리 체계 구축 등이 주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헬스 연계 통합돌봄(myPlace Heath) 사례처럼, 디지털 기반의 지역통합돌봄 모델은 고령자의 자율성과 건강 유지를 지원하고 의료 접근성을 높여주고 있다. myPlace Heath의 첨단기술 기반 서비스는 원격모니터링, 맞춤형 앱, AI기반 위험 예측이다. 원격모니터링으로 고령자의 생체 신호 및 일상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해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한다. 투약알림, 예약관리, 식사와 운동 가이드 등 개별 이용자 맞춤형 기능을 앱으로 제공한다. AI기반 위험 예측으로 응급실 방문 가능성, 낙상 위험 등 예측 모델을 통해 사전 개입이 가능하다.
이러한 모델은 국내 통합돌봄 지원 확산,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플랫폼 구축, 비대면 진료 인프라 확충 등으로 이어져야 한다.
◆기후전환은 환경 책임성을 강조 = WHO는 기후변화를 21세기 최대의 건강 위협으로 보고 있다. 2030~2050년 사이에 기후 변화로 인해 영양부족, 말라리아, 설사 및 열 스트레스만으로 연간 약 25만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했다.
바이오헬스산업도 전통적인 연구개발 중심성장에서 벗어나 지속가능성과 환경에 대한 책임을 통합한 산업구조로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특히 탄소 중립, 저탄소 공정, 친환경 기술 내재화는 바이오헬스 산업의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이는 글로벌 규제와 시장 요구 변화 그리고 사회적 책임에 대한 기대 증가가 반영된 흐름이다.
WHO와 국제 비정부기구인 ‘손상없는 헬스케어’(Health Care Without Harm)의 보고에 따르면 세계 보건의료 부분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4.4%를 차지하고 있다. 바이오의약품 생산, 콜드체인 유통, 연구시설 운영, 약물 폐기 등 산업 전반에서 상당한 에너지와 자원이 소비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바이오헬스 기업들은 제조 공정과 공급망의 탄소배출 감축, 지속가능한 원료와 포장재 도입, 친환경 연구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친환경 혁신 전략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바이오헬스 강국이라는 국가 전략 속에서, 국제 변화 흐름을 선도적으로 반영하고 친환경·고도화·공공성을 아우르는 산업 전략 재정립이 요구된다.
이 본부장은 “디지털 기술은 치료의 정밀화와 의료 효율성 증대, 인구 고령화는 예방과 돌봄 중심의 시스템 전환, 기후전환은 환경 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스마트시티와 디지털헬스의 연계, 친환경산업과 예방의학의 융합 등 산업간 통합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I기반 신약개발이 국내 제약 혁신 = 제약바이오산업에서 디지털전환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 신약개발 과정의 어려움, 신약개발 비용 및 기간의 증가 등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정혜윤 보산진 바이오헬스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제약산업에서 디지털전환은 연구개발, 임상시험, 제조 및 생산, 공급망 관리, 마케팅 및 판매 등 가치 사슬 전반에 걸쳐 디지털기술을 적용하고 최적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신약개발에서 전통적 접근 방식은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1상 성공률이 55~65%에 그친 반면, 인공지능 기술 기반의 신약 후보물질은 80~90%를 기록한다는 분석이 있다. 임상시험에서 데이터와 예측 모델을 활용하면 환자 모집 속도가 최대 2배 빨라질 수 있다. 분산형 임상시험은 모바일 기술, 원격의료, 가정방문 등 원격 접근 방식을 통해 임상시험 비용을 2~3% 절감하고 투자수익률을 4배로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기도 한다.
이큐비아 조사에 따르면 현재 제약바이오기업의 40~50%가 인공지능으로 혜택을 받고 있다. 기업의 2/3는 투자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신약후보 물질 개발에서 디지털전환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이자의 경우 2019년 디지털혁신센터를 설립하고 420명 인력을 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연구원은 “글로벌 제약기업 대비 투자와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AI기반 신약개발은 더욱 중요하다”며 “가장 중요하고도 시급한 것은 우수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정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는 대학-대학원에 융합학과 활성화시키고 당장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연결해 주는 사람을 키워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규철 기자 gckim1026@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