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인공지능 시대, 인구 재배치를 다시 설계하자
산업화는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규모 인구 이동을 이끌었다. 도시는 성장했고 농촌은 인구를 잃었다. 이 흐름은 오늘날에도 이어진다. 2024년 통계청에 따르면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50%를 넘었고,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1년 기준으로 읍·면·동 단위 1791개 마을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반면 도시는 조기 퇴직·고용 불안·치솟는 주거비 등으로 삶의 지속가능성을 빠르게 잃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이 촉발한 고용 격변이 다가오고 있다.
매켄지(2023)는 2030년까지 국내 사무·행정직의 28%가 자동화 위험에 놓일 것으로 전망한다. 자동화로 대체되는 업무 중 상당수는 원격·플랫폼 형태로 전환돼 ‘일은 도시, 생활은 농촌’ 모델을 현실화할 것이다. 도시 과밀, 농촌 공동화, 일자리 축소가 동시에 심화하는 지금, 그 반작용처럼 도시인구가 농촌으로 향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이를 단순한 귀농이나 정서적 귀향에 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전략적 ‘인구 재배치’이다.
인구 불균형은 지역소멸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는 환경·경제·사회 전반을 위협하는 지속가능성의 위기다. 마을이 사라지면 생태계 관리 주체가 없어지고, 교육·의료·문화 같은 필수 서비스가 붕괴된다. 따라서 인구 재배치는 지속가능성을 재건하는 사회적 설계 작업이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인구 재배치’필요
이 전환의 열쇠는 우리 사회 중장년층이다. 도시에선 퇴직자지만 농촌에선 경험과 기술을 갖춘 실전형 인력이다. 자녀 교육을 마친 이들은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전환할 수 있으며 공동체 운영과 사회 서비스 복원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들이 들어오면 일손 보충을 넘어 새로운 경제활동과 서비스 수요가 생겨나고, 청년층 유입 기반도 마련될 것이다. 중장년층은 대표 사례일 뿐이다. 디지털 유목민·다문화 가정·은퇴 전문직 등 다양한 계층이 농촌 정착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농촌이 식량·에너지를 공급하고 도시는 기술·자본을 지원하는 상호 의존 구조를 설계해야 국토가 지속 가능해진다.
환경 측면에서도 농촌 이주는 긍정적이다. 도시는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이 집중된 공간이다. 반면 농촌 생활은 이동 거리와 소비 패턴이 단순하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활용 여지도 크다. 필자가 강원 고랭지 배추를 대상으로 수행한 전과정평가(LCA) 연구에서도 농촌 정착 가구의 탄소 발자국은 도시 거주 가구보다 30% 이상 낮았다.
농업은 이제 ‘6차 산업’(1차 생산+2차 가공+3차 서비스)으로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팜·농산물 가공·농촌 관광·원격진료 같은 AI 기반 서비스는 도시 경험이 풍부한 인력이 필요하다. 반복 업무가 줄어드는 도시 고용 구조 속에서 농촌은 중장년과 청년 모두에게 새로운 일자리와 정체성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현실로 만들 장치도 분명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독일처럼 농업전문 교육과 지역대학 연계 프로그램을 확대해 ‘학습 후 정착’ 모델을 제도화하고, 농지연금·직불제·농어민 수당을 통합한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지방정부는 의료·교통·교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지역이 다시 살아나는 출발점
도시 중심 성장 체제가 흔들리는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 이주’가 아니라 ‘인구의 전략적 재배치’다. 그것은 국가가 먼저 그려야 할 미래의 지도이며, 지역이 다시 살아나는 출발점이다. 지금이 바로 그 설계를 시작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