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김여정 담화에서 ‘활용 틈새’ 찾자

2025-07-30 13:00:02 게재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28일과 29일 잇달아 우리와 미국을 향한 ‘담화’를 발표했다. 이제까지의 북한 태도와 결을 달리하는 주목할 만한 기류변화다.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제목의 28일 대남 담화는 이재명정부 출범 55일 만에 나온 북한의 첫 공식반응이다.

제목에서 보듯 기존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견지하고 있기는 하다. “리재명정부가 아무리 동족 흉내를 피우며 온갖 정의로운 일을 다하는 것처럼 수선을 떨어도 한국에 대한 우리 국가의 대적 인식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우리는 서울에서 어떤 정책이 수립되고 어떤 제안이 나오든 흥미가 없으며 한국과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는 공식입장을 다시금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기존 입장 견지하면서도 전제 내세우며 대화 가능성 내비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대조선 확성기 방송 중단, 삐라 살포 중지, 개별적 한국인들의 조선 관광 허용” 등을 거론하며 “한국이 리재명정부가 집권 직후부터 나름대로 기울이고 있는 ‘성의있는 노력’의 세부들”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흔히 보였던 ‘거칠고 적대적인 표현’도 많이 누그러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해 29일 내놓은 대미 담화 내용도 다목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김 부부장은 “미국이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만 집착한다면 조미 사이의 만남은 미국측의 ‘희망’으로만 남아있게 될 것”이라며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우리 국가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는 “핵을 보유한 두 국가가 대결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결코 서로에게 이롭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최소한의 판단력은 있어야 할 것이며 그렇다면 그러한 새로운 사고를 바탕으로 다른 접촉출로를 모색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여정 담화를 북한이 항용 써오던 ‘북한식 문법’으로 대입해 해석하면 여러 전제조건을 달고 있지만 그동안 미국의 협상 제의를 일축해오던 태도에서 변화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반도 긴장완화와 남북대화를 주창해온 이재명정부에 대해서도 윤석열정부 때 보였던 철저한 무시전략에 변화가 있을 여지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 백악관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 소통하는 데 여전히 열려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적인 관세협상 압박과 더불어 과도한 국방비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고, 주한미군 성격변화 등 미국의 복합적 세계전략이 거론되는 마당에 트럼프의 대북한 협상의지를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것은 사실이다.

구조화된 한반도 갈등에서 핵심인 북미 관계가 풀려야 남북 간에도 대화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간에 긍정적 신호가 오가는 조짐은 바람직한 진행이다.

내달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하거나 최소한 대폭 축소해야

이런 가운데 내달 예정돼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조정 여부가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28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정을 이 대통령에게 건의할 생각”이라며 “그게 (이재명정부 대북정책의) 가늠자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대남담화에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고 콕 집어서 겨냥했다. 국방부는 29일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지자유의방패, UFS)의 일정 조정 여부에 대해 “한미가 합의한 절차에 따라 상호 협의 하에 진행된 사안으로 현재까지 변경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시의적절히 판단해 조정하리라고 믿지만 국방부도 이제까지 늘 해오던 대로 답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향적 태도를 보이기를 촉구한다. 문민 국방장관이 취임한 만큼 군사적 사고에만 매몰되지 말고 한반도평화 전체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가 필요하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노태우 대통령 이래 역대 정부에서 상황에 따라 취소·연기하거나 대폭 축소한 사례가 많다. 상호 ‘적대행위’로 인식될 조치를 줄여 불신의 벽을 낮추고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긴요한 시기다

이원섭 본지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