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지정학적 선택

2025-07-31 13:00:08 게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의 정치와 경제는 국내외 가릴 것 없이 대격변에 휩싸였다. 2022년 초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현실화됐고, 미국의 이란 핵시설 타격 사태로 이어졌다.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은 마치 예정된 수순처럼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은 극단적 분열로 혼란스럽다. 중국 내부에서도 심상치 않은 권력 갈등에 대한 소문이 들린다. 그야말로 글로벌 질서 전반에 걸쳐 불확실성과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은 글로벌리즘이 종언에 가까워졌음을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 초거대 사회실험이 한층 가속화되면서 거대한 실패와 붕괴의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가 글로벌리즘을 붕괴시켰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글로벌리즘 자체에 중대한 내재적 모순이 누적되고 있었다. 지난 글로벌화 시대에 극단적으로 전개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패권국 미국의 건실했던 노동계층을 소외시켰다. 파레토 최적(Pareto optimum) 달성에 실패한 글로벌리즘은 미국 사회를 극단적으로 양분시키는 토양이 됐다.

미중 핵심 이익 충돌로 디커플링

패권을 향한 강대국들의 행보는 각자의 국내 정치적 동력과 깊게 맞물려 있다. 국가는 패권을 통해 국민 행복과 국가 생존을 도모하고자 하며 이러한 패권 추구는 국민의 단결과 지도자에 대한 강력한 지지를 끌어내는 내부 정치동력이다.

초강대국들은 내외부적 위기 국면을 타개하고자 세계 최강이라는 초월적 이상주의를 내세우지만 그럴수록 현실의 지정학에 부딪혀 서로의 핵심 이익이 충돌하면서 심각한 긴장 국면에 놓이고 있다. 갈수록 고조되는 미중갈등의 밑바탕에는 이와 같은 각국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존재한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공급망은 오랜 공급망 통합의 결과 샴 쌍둥이처럼 서로 깊이 얽혀 있다. 고도로 통합된 글로벌 경제 하에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제3국들도 미국과 중국의 경제에 깊이 연계돼 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던 중국은 이제 거의 모든 제조업 분야에서 최강국으로 부상했다. 최첨단 기술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지능 등 최첨단 산업에서 미국마저 중국 출신 인재들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다. 전통적 제조업부터 최첨단 산업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국들의 입지는 매우 약화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상당한 출혈을 각오하고 미중 경제 디커플링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통상정책이 아니라 포괄적인 경제안보 전략의 일환임이 분명하다. 핵심 산업에서의 공급망 재편을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춤으로써 자국 안보의 취약성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21세기에 이르러 국가안보의 개념은 군사안보와 경제안보가 결합하는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한국과 미국의 상호관세가 마감시한(8월 1일)을 하루를 앞두고 타결됐다. 3500억달러 대미투자에 상호관세율 15%를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난항을 겪었다. 협상이 길어지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통상외교에서 우리나라에게 과도한 경제적 양보를 요구하는 데에서 나아가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선택을 묻고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실제로 유럽연합(EU)에 대한 미국의 관세압박은 미국내 투자를 통한 공급망 재편 요구, 그리고 대러 견제를 위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방비 증액 요구와 결부됐다.

우리의 선택은 생존과 제도적 자유 확보

각국의 지정학적 선택은 국제관계에서 각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생존공간(Lebensraum)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에게 생존공간 확보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열강이 추구했던) 단순한 물질적 공급망 확보를 넘어, 그 공간 내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의 문제다.

지정학적 대격변기에 놓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선택 역시 국민의 물질적 생존공간은 물론, 시민적 제도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박진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